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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떠난 김수업 선생, 슬프고 또 슬픕니다

[편집국에서] 겨레말 사랑 으뜸학자 김수업 선생의 영전에 바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마을에 문자 쓰기를 몹시 좋아하는 선비가 살았다. 어느 날 처가에 가서 자는데 밤중에 범이 와서 장인을 물어 갔다. 집안에 사람이라고는 장모와 내외뿐인 터이라, 어쩔 수 없이 선비가 지붕에 올라가 소리쳐 마을 사람을 불러 모았다. '원산대호가 근산 래하야 오지장인을 칙거 남산 식하니 지총지자는 지총 래하고 지창지자는 지창 래하소! 속래 속래요!'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먼 산 큰 범이 와서 우리 장인을 앞산으로 물고 갔으니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들고 나오고 창을 가진 사람은 창을 들고 나오십시오! 어서요. 어서!' 뜻인즉 이렇지만 알아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가 총이며 창을 들고 뛰어나올 것인가?”

 

책 《말 꽃 타령, 지식산업사, 2006》에서 김수업 선생은 문자 쓰기를 좋아하는 이른바 지식인들을 이렇게 꼬집었다. 어디 그뿐이랴?

 

선생은 찔레꽃, 살구꽃, 복숭아꽃은 물론 불꽃, 눈꽃, 꽃구름, 꽃수레까지 우리 겨레는 아름답고 종요로운 것을 “꽃”이라 불러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문학”이 아닌 “말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이란 말도 원래 있던 말이 아니고 근대에 새로 만들어진 말인데 뜻도 맞지 않는 “문학”은 내버려 두고 뜻이 잘 맞는 “말꽃”에는 왜 시비를 거는 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똑같이 새로 만든 말인 문법ㆍ삼각형ㆍ형용사는 내버려 두고, 말본ㆍ세모꼴ㆍ그림씨만 이상하다고 트집을 잡아 내쫓고 만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외치며, 평생 겨레말 사랑에 온몸을 던져 몸부림치던 우리말 사랑 으뜸학자 김수업 선생이 어제(6월 23일) 경상대학교의료원에서 79해의 삶을 끝냈다. 삶의 말년에 선생은 (사)토박이말바라기 으뜸빛(이사장)을 맡아 이끌었고, 토박이말을 살린 국어사전을 펴겠다고 제자, 후학들과 함께 몇 년을 정성을 쏟고 또 쏟다가 뜻밖에 지난해 병을 얻은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다.

 

 

선생은 우리 우리문화신문에도 큰 사랑을 주셔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사기(詐欺)다( 2015.01.18.), ”이천 년에 걸쳐 짓밟힌 우리말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2015.01.26.), ”아베를 꾸짖는 하버드대 한인학생회는 눈부신 빛“(2015.05.06.), ”국정교과서 사태, 보자 보자 하니 너무하다“(2015.11.05.) 같은 외침글(칼럼)을 보내주신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이라는 연재마당을 만들고 “괴다와 사랑하다” (2015.03.10.), “누다와 싸다”(2015.11.27.), “꽃과 삶꽃”(2016.02.15.), “한글과 우리말”( 2016.09.22.),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자주 쓰던 말, 배달겨레”(2017.05.22.), “젊은 사람들이 쓰는 ‘쪽팔린다’에서의 ‘쪽’”(2017.11.15.) 같은 글을 오랫동안 연재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은 《배달말꽃- 갈래와 속살(지식산업사, 2002)》, 《말 꽃 타령(지식산업사, 2006)》, 《우리말은 서럽다(나라말, 2009》 같은 주옥 같은 책들도 펴냈다.

 

 

그런 선생이 우리 곁을 영영 떠난 것이다.

 

오호 슬프고 슬프다!!

최현배 선생 뒤로 들온말(외래어)에 찌들려 신음하는 우리말을 붙들고 몸부림쳐온 겨레말의 으뜸 학자는 그렇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제 그 어떤 겨레말 사랑 학자가 있어 선생이 못 다한 한을 풀어줄 것인가?

 

온통 지식인들이, 위정자들이, 아니 심지어는 국어학자들 마저도 한자말이나 나라밖에서 들어온 말에 빠져 우리말이 점점 고사 지경에 빠지는 지금의 상황이다. 그런 때에 더욱 우리에겐 선생이 이 나라에 계시다는 게 정말 복이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선생의 영전에 슬퍼하기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힘을 내서 다시 한 번 겨레말이 불끈 일어서고 완전한 배달나라의 주인이 되도록 온몸을 던질 때다. 그래야만이 선생의 뜻을 살려내는 일이 아니던가?

 

선생이시여! 우리의 김수업 선생이시여!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며 우리의 겨레말 사랑길이 곧바로 갈 수 있도록 등불을 비춰주소서. 비춰주소서.

 

 

빈소 : 경상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01호

마지막 배웅하는 자리(발인) : 6월 25일 아침 9시

장례미사 : 10시 칠암성당

장지는 문산 상문리 성당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