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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왜군 포로가 된 백성에게 내린 한글교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1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산시립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951호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가 있습니다. 이 “선조국문유서”는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선조가 피난하여 의주에 있을 적에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로 쓴 교서입니다. 그때 조선의 백성들 가운데는 일본에 포로가 되어 왜적에게 협조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선조는 왜군의 포로가 된 백성을 회유해 돌아오도록 교서를 내린 것이지요. 당시 김해수성장(金海守城將) 권탁(權卓)이 이를 가지고 적진에 숨어 들어가서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우리 동포 100여 명을 구출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선조국문유서”는   이라는 제목 아래 기록된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부득이 왜인에게 잡혀간 백성들의 죄는 묻지 않음은 물론,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동태를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로 잡힌 우리 동포를 많이 데리고 나오면 천민이건 양민이건 가리지 않고, 벼슬을 시키겠다는 것이며, 이어 아군과 명군이 합세하여 왜군 소탕은 물론 왜국까지 들어가 제압하려는 계획도 알려주면서 그 전에 서로 알려 빨리 적진에서 나오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 집에서 보관하다가 도둑을 맞았는데 이후 다시 찾아서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서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의 일부분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일 뿐더러, 모든 공적 문서를 한문으로만 기록하던 통례와는 달리 포로가 일반 백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쓰인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