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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만난 이상설과 최재형

이상설유허비, 노령임시정부터, 4월참변추모탑에 가다

[우리문화신문=우스리스크 이윤옥 기자]

 

즈문해 이어져온 해동성국의 넋

우수리스크 수이펀의

젖줄로 흐르는 곳

 

물돌이 굽이굽이

세월의 한도 굽이굽이 멈추는

임 계신 곳

 

홀연히 바람결에 들려오는

한줄기 만파식적

임께서

불어주는 대한의 찬가

 

임이여!

오래도록 지켜주소서

찬란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의 넋으로 남아주소서.  - 이윤옥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에서-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는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이 남긴 말이다.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여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워 후학들을 길러내던 중 1907년 헤이그특사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ㆍ이위종 선생과 함께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다. 그 뒤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13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권업회 활동 등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어제(25일) 찾은 이상설 선생 유허비는 러시아 우스리스크시 우쪼스노예 마을 주변 수이펀강변 (綏芬河, 러시아말로는 라즈돌라 노예강)의 호젓한 언덕에 세워져있다. 선생은 1917년 3월 2일 48살로 우수리스크에서 숨지면서 자신의 유해를 화장하고 자신의 필적을 모두 태우도록 유언했다. 선생의 유언에 따라 선생의 유해는 이곳 강가에 뿌려졌으며 이후 이곳에 광복회와 고려학술재단이 2001년 10월 8일 러시아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상설 유허비를 세운 것이다.

 

선생의 유허비가 있는 곳은 옛 발해땅 솔빈부가 있던 곳으로 유허비 앞으로는 수이펀강이 흐른다. 수이펀강(綏芬河) 강은 중국 지린성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거쳐 멀리는 우리나라의 동해로 흘러가는 물줄기이다. 그러나 이상설 유허비가 있는 현재 위치는 여름이면 해마다 홍수로 강물이 넘쳐 유허비가 잠긴다고 한다. 어제 이상설 유허비에 대한 안내를 해준 한국농어촌공사 러시아극동영농지원센터 문용권 센터장의 설명에 따르면 해마다 8월 무렵 홍수철에는 유허비를 보러왔다가 길이 물에 잠겨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유허비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기단을 높이는 문제는 관계자들이 깊이 숙고해야할 것이다. 유허비 진입로도 포장이 안 돼 진흙길이었다.

 

 

 

우수리스크는 한인들이 러시아에서 활약한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으로 유적지로는 이상설유허비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최재형 선생 고택(우수리스크시 볼로다르스코 38번지)이 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 한인 최고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것은 유명한 일이다. 현재 최재형 고택은 내년 4월 (예정) 개관을 목표로 외관공사는 끝이 났고 내부 전시 부분을 남겨놓은 상태다.

 

또한 전로한족대표자회의 개최지 및 전로한족중앙총회 결성지였던 우수리스크시 자니드브릅쓰까야 15번지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이곳은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인 1917년 5월, 러시아 거주 한인 최고 기구였던 ‘전로한족대표자회’가 열린 곳이다.

 

 

 

이 전로한족중앙총회는 항일독립운동기관으로 1919년 블라디보스톡임시정부(노령임시정부)로 발전했다. 흔히 상해임시정부가 나라밖 첫 임시정부인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러시아 지역에서는 그 보다 앞서 이곳에서 노령임시정부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현재 초등학교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해져 있어 기자는 간신히 양해를 얻고 들어가 표지판 사진 1장을 찍을 수 있었다.

 

우수리스크에서 또 들려야 할 곳은 이른바 ‘4월참변’으로 불리는 일본군이 저지른 대학살을 추모하는 추모탑이다. 4월참변은 1920년 4월 4일 밤부터 이틀 동안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의 만행으로 광란의 살상극을 벌어졌던 곳에 세운 추모탑이다. 일본군은 러시아 정부기관, 블라디보스톡 한인촌, 우수리스크 한인 거주지 등을 다니며 방화, 가택수색 검거, 학살을 저질러 수많은 러시아인과 함께 한인동포 300여명이 집단 학살당했다. 이때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 민족지도자들도 처형을 면치 못했으니 민족의 비극이 따로 없다.

 

 

또 한곳 들러봐야 할 곳은 고려인문화센터이다. 이곳은 2009년 10월 31일 ‘러시아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발해시대와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으며 다목적 공연장과 한국어 등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인의 구심점인 고려인문화센터는 외부지원이 거의 없어 경영에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외롭게 러시아에서 한인들의 문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고려인문화센터에 고국 정부와 일반인의 관심이 필요함을 느꼈다.

 

 

 

 

어제(25일) 하루로 돌아보기에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우수리스크 일대의 독립운동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선열들이 걸었던 길을 되새기는 일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었다. 육신은 갔지만 그 얼과 넋이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것, 아니 사그라질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것이 민족의 자긍심이요, 민족혼의 정수인 ‘독립투쟁’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