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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00년 전 오늘은 고종황제가 독살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9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오늘 곧 1월 21일 11시30분 사적 제207호 남양주 홍릉(洪陵, 고종과 명성황후 무덤)에서 대한제국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봉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조선왕릉 제향은 역대 임금과 왕비의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기신제)인데 올해는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고종황제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을 높이는 말) 100돌이 되는 해지요.

 

100년 전 오늘(1월 21일) 고종황제는 묘시(卯時, 아침 5시부터 7시까지)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붕어(崩御)했습니다. 일제는 고종의 죽음이 뇌일혈이라고 발표했지만 《윤치호일기》에 따르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건강한 상태였던 황제는 죽은 뒤 혀와 이빨이 타 없어지고 온몸이 퉁퉁 부어오른 주검으로 발견되어 수의로 갈아입히기 위해서 입은 옷을 찢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독살당한 주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하지요.

 

 

고종이 ‘강제 양위식’을 당한 뒤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본과 병합되었습니다. 고종은 그 뒤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 특사를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자주와 독립’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종이 일제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고 이 때문에 독살했을 것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후 고종의 장례식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명백한 황제 독살 정황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태극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황제가 만든 탑골공원에서, 황제의 궁궐이었던 경운궁 대안문 앞에서, 그들은 식민지 백성이 아닌 이미 망해버린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만세를 외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1만세운동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