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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이완용을 개 취급한 노백린 장군 순국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3년 전인 1926년 오늘(1월 22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을 지내고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미국에서 최초의 항일비행사 학교를 설립했던 노백린(盧伯麟) 장군이 중국 상하이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선생은 육군무관학교장을 비롯하여 헌병대장, 육군 연성학교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한 평생을 무인(武人)으로서 항일무장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노백린 장군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청한 연회에서 이완용(李完用), 송병준(宋秉畯) 등 매국노들이 참석하고 있음을 알고 이들 앞으로 가서 “위리 워리”하고 개를 부르듯 했지요. 그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개 같은 놈이라는 뜻이었는데 이를 보고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세미치(長谷川好道)가 칼을 빼 들자 노백린 장군도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이 험악한 돌발적 사건을 본 이토 히로부미가 황급하게 하세가와를 만류하여 겨우 결투는 면했으나 연회장은 파장이 되고 말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920년 노백린 장군은 샌프란시스코에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뒤 같은 해 5월에는 연습용 비행기 2대를 도입하고 한인비행사학교를 개교하였지요. 1922년 6월에는 연습 비행기가 5대로 늘어났으며 학생수가 41명에 달하고 1923년에는 1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졸업생들은 의기가 충천하여 “도쿄로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고 호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 손으로 나라밖에서 비행사를 양성하고, 독립전쟁을 위한 항일비행군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군역사상 매우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노백린 장군은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1924년 4월 9일까지 1년 10개월 동안 국정을 이끌고 임시정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장군은 “군복에 말 타고 남대문에 입성해보면 참으로 좋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고 하며, 1926년 1월 22일 심장병이 악화되어 상하이 단칸방에서 52살을 일기로 순국했지요. 정부는 노백린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