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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나도 스웨그 하고 싶다. 조선의 외침으로

“스웨그에이지”라는 창작 뮤지컬을 보고 읊는 이야기
[솔바람과 송순주 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스웨그에이지”라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공연한다는 연락이 온 것은 개막을 며칠 앞 둔 6월 중순이었다. 카톡에 동봉해 준 포스터에 있는 ‘스웨그’란 타이틀은 60년 인생을 방송계 근처에서 보낸 필자에게도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원래 ‘swag’라는 단어는 영국 셰익스피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에 나온 말로서 ‘건들거리다’, ‘잘 난 척 하다’라는 뜻이란다.

 

대학 때 영문학 근처에 가보긴 했지만 그 희곡을 원문으로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 단어의 뜻을 알 턱이 없는데, 2014년에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쓰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나가서 자신만의 여유와 멋, 약간의 허세를 여과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단다.

 

결국 스웨그 에이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멋과 여유, 생각을 자기들 식으로 풀어 헤쳐보이는 시대라는 뜻일 게다. 그 밑의 부제가 ‘조선의 외침’이니, 조선이란 나라, 조선이란 사회에 대한 생각을 자기들 식으로 마음껏 펼치는 뮤지컬이란 뜻임을 겨우 알겠다. 확실히 나는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사림이구나.

 

 

이게 뮤지컬이고 그것도 창작이란다. 창작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공연계나 영화계에서는 안다. 그것은 남이 가지 않은 길로 간다는 것이고, 그 길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어서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다른 말로는 깡통을 각오하는, 일종의 도박과 같은 길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예전에는 외국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은 것들을 수입해서 틀면 돈이 생기고 좋았다. 연극이나 뮤지컬도 외국에서 이미 정평이 난 것들을 번역해서 조금 상황을 바꾸어 공연하면 소위 본전은 한다.

 

그런데 그것을 생짜로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험난한 길이다. 글자 그대로 도박이다. 왜냐면 제작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고, 성공하지 못하면 이른바 쪽박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뮤지컬들이 사실은 외국에서 만들어져 성공한 것들을 번역하고 번안해서 올린 것들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저 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편하게 보아왔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그것은 대사와 노랫말이 노래 곡조와 좀 엇갈리고 있어서 뜻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말을 처음 배워서 쓰는, 그런 어색함이 있지만, 외국에서 유명했다고 하니까, 음악이 좋으니까 그저 재미있게 잘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뮤지컬은 몸에 맞지 않는 한복을 입은 서양인들을 보듯, 몸에 착 붙지 않는 양복을 입고 나타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뭔가 착 감기는 것들이 부족했다. 더구나 그 뮤지컬이 보여주려고 했던 세계관이나 정신세계가 우리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말하자면 우리 몸에 맞는 진정한 옷으로서의 뮤지컬이 아니라 겉만 번드르한 뮤지컬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창작뮤지컬이란다. 이 뮤지컬의 내용을 짐작케 하는 것이 부제로 붙은 ‘외쳐, 조선!’이다. 조선에 대해 외치라는 명령형이다. 조선시대가 어쨌길래, 조선이 무엇을 외치라는 것인가? 도대체 이런 뮤지컬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홍보동영상을 보니깐 뭐 한참 요란스러운 것 같던데...

 

 

 

막이 올랐다. 주말 저녁 공연인데 객석이 거의 다 찼다. 젊은 관객층이다. 우리 같은 노털들은 뮤지컬을 보는 것도 습관이 안 되어 있고 즐길 줄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들과 함께 본 150분이었다. 1부 75분, 휴식 15분, 그리고 2부 60분. 2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마도 극을 이끌고 가는 스토리와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과 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우리들의 옷을 입고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시조가 국가 이념인 가상의 조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 속에 담아 훌훌 털어버렸던 백성들, 이들에게 있어서 시조는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언론이자 자유로운 세상을 향하는 백성들의 꿈이다.

 

그런 시조가 역모 사건으로 금지되면서 자유도 행복도 잊은 채 살아가다가 전 백성이 참여할 수 있는 시조자랑이 열리게 되고, 이 대회를 계기로 그동안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비밀조직인 골빈당이 악독한 위정자들의 탄압을 극복하고 백성과 임금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데 성공한다. 매우 단순한 우화, 또는 동화 같은 줄거리는 곧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이 사는 현실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생각났다. 거기에는 일제의 무력 침략 앞에서 망해가는 나라 조선을 살려내고 싶었지만 결국 존엄을 유린당한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가 관객들의 피를 끓게 하고 인기몰이를 했다. 이번에는 조선이란 봉건사회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이 힙을 합쳐 일제라는 외세를 업고 백성을 탄압하려는 권력을 넘어서서 세상을 열어놓는다.

 

그것으로서 암울한 현대에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을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어언 3주 째, 여기에 온 젊은 관객들은 아마도 친구들로부터 소개나 권유를 받아 왔을 가능성이 많다. 젊은이들이 공감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스토리 면에서 이 뮤지컬은 일단 시험관문을 통과한 것 같았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음악이 가장 큰 감동으로 들어왔다. 음악을 듣다 보면 여러 종류의 국악기 소리, 그리고 클래식 관현악의 소리, 또 밴드 악기의 소리가 골고루 섞여 나온다. 서로 다른 장르의 악기와 음악들이 충돌하지 않고 그것 모두가 우리 음악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흥이 난다. 등장인물들이 소곤거리고 한탄하고 대화하는 것뿐 아니라 걷고 뛰고 달리는 장면에는 실제 국악의 장단이나 마치 국악과 같은 장단이 섞여 있는데 그것이 국악기와 서양악기로 다양하게 편곡되어 나온다.

 

 

 

도중에는 랩도 나온다. 랩이 국악 속에 녹아 있다. 뮤지컬을 보기 전에 읽은 음악감독의 말은 ‘국악과 랩을 접목시킨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나라에 원래 있는 소스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보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판소리에서 반복적인 리듬으로 사설을 늘어놓는 부분이 서양의 랩과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에 눈을 돌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한 작곡과 편곡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음악이나 우리 국악, 아니 우리 음악에 대해 작곡자가 완전히 이해를 하고 그것을 그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최근에 우리의 ‘국악’이라는 이름이 현대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작업에 걸맞은 이름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 뮤지컬을 보면서 여기에서야 말로 국악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 음악은 양악도 국악도 아닌 ‘우리음악’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확신을 다시 하게 되었다. 곧 어느 새 우리의 젊은이들은 남의 음악이라고 할 양악이나. 오래된 음악형식이라고 할 국악의 범주와 한계를 넘어서서 이 시대 우리의 음악, 동서양의 모든 음악 요소를 종합하고 새롭게 빚어내는 우리의 음악을 이미 멋지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감탄을 넘어 감동이었다.

 

안무에서도 우리 무용과 힙합의 만남이 돋보였다.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속박 받았던 흑인들의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한 힙합댄스가 우리 민족의 한과 흥을 표현하는 우리 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다시 살린 것이다. 우리 전통무용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얼반댄스(여러 가지 장르가 한데 어우러져 뒤섞이면서 춤꾼의 개성이 더욱 드러나는 춤), 락킹(힙합댄스의 한 장르), 비보잉과 같이 그 동안 뮤지컬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힙합댄스의 개별적인 동작들과 뒤섞이고 어울려서 강렬한 동작으로 무대 위를 휘감는다.

 

여기에서도 춤의 동서양이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또 뒤섞이고 새롭게 만들어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나은 위대한 비디오예술가 백남준 씨가 1974년에 발표한 비디오 작품 ‘지구촌의 흥(Global Groove)의 한국판이다. 동서양 지구인들의 다양한 흥이 이 뮤지컬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뮤지컬을 보는 가장 큰 재미는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가창력이자 연기력이었다. 모두가 뮤지컬 무대에서 그 역량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신인 아닌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들의 노래말이 귀를 파고 든다. 우리가 본 날에는 이 나라 제일의 시조 꾼이지만, 홍국의 딸이라는 비밀을 감추고 골빈당에서 활동하는 ‘진’ 역에 배우 김수하가 등장했는데, 그녀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일본, 독일, 스위스 등 인터내셔널 투어에서 미스사이공 ‘킴’역으로 활약해 그 능력을 평가받은 대단한 배우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한국인 최초 여자주역’이라는 새 역사를 만든 장본인인데, 영국 런던 특파원을 하면서 지켜본 영국의 뮤지컬계에서 한국인이 주역을 맡았다는 것은, 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역사에 없는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번갈아 공연하는 김수연 역시 최근 <더 캐슬>, <인터뷰>, <시라노> 등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역량 있는 배우이기에 그 두 여주인공이 이 극을 더 신선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런 몇몇 중견 배우들 외에는 출연진 거의가 신인들인데도 전혀 신인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역량과 감독의 연출이 합작해서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관객으로서 이 뮤지컬을 보면서 출연진과 함께 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좋았다. 무대 위 배우들이 펼치는 역동적인 안무로 흥이 함께 하면서, “오에오!” 라고 외치는 부분은 관객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서 후반부에서는 결국 함께 부르게 된다. 여주인공과 골빈당과 백성들이 관객과 함께 하는 이런 환호가 관객을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연희마당의 출연자라는 착각과 기쁨을 준다. 이렇게 2시간 반이 지나갔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는 우리 한국적인 해학과 흥과 음악이 잘 짜이고 넘치는 이 뮤지컬이 해외에서도 공연하게 되면 인기를 끌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어떤 형식이어야 해외에서도 성공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무슨 말인가 하면 런던 특파원으로 있을 때 우리 뮤지컬 ‘명성황후'가 현지(영국에서는 '마지막 황후, The Last Empress')에서 공연을 했는데 출연진들이 영어번역을 외워서 공연하다 보니 주연인 이태원 외에 다른 출연자들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우리가 외국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올릴 때 외국어의 문장에 따라 만들어지는 반주에 우리말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듯이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슬픈 원어공연이라는 포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 그대로 공연은 하고. 번역문을 잘 넣어주는 것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 우리도 요즈음 외국 영화들을 극장이나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는데 자막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우리말 더빙보다도 더 현실감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렇게 익숙해져 있는데 외국인들도 외국어자막을 잘 만들어주면 훨씬 이해를 잘하고 더 좋아할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이 뮤지컬이 태어나게 된 것은 기획사인 PL기획의 송혜선 대표의 집념과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서편제’를 만든 태흥영화사의 홍보실장을 오래 한 사람이다. 그녀의 홍보실력(?)으로 (이렇게 말하면 영화를 기획하신 이태원 사장과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음악인 김수철 이하 모든 출연진, 제작진 모두 화내실 것이지만) '사상최초로 관객 100만 돌파의 서편제'라는 우리 영화의 금자탑이 만들어졌다면, 그 경력을 바탕으로 영화사를 나와 뮤지컬 업계로 뛰어든 지 20년의 연륜과 노력 끝에 이런 창작뮤지컬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뒤에는 사실 영화계에서 진정한 우리 것을 찾기 위해 분투하신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 있었다. 영화를 수입해 틀면 돈이 되지만 그 길 대신에 우리 영화를 만드는 길에 뛰어들어 성공도 하고 좌절도 한 이태원 사장에게서 송 대표가 창작이 중요하다는 인식과 일을 추진하는 집념과 방법을 배운 것임을 가까이에서 보았기에 문화인의 일원으로서 이태원 사장과 송 대표 두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

 

좋은 쪽만 보면 좋게만 보이겠지만 이 뮤지컬에 개선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스토리에서 동화 같은 면을 조금은 현실적인 이야기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전 세계인 누구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스토리로서의 약간의 변신이 아쉬운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졸업작품이 이 정도로 업그레이드 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고 더구나 이것이 창작이기에 앞으로 이 작품을 계기로 우리의 창작 뮤지컬이 더 많아지고 다채로워져서 이제는 외국작품 번안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생각, 사상, 눈물이 담긴 창착품들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세상을 바꾸는 큰 파동으로 발전된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우리의 공연계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준다. 그것을 기대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멋진 창작 뮤지컬을 보고는 그 감동과 기쁨에 말이 길어져 버렸다. 이거 나도 어느새 스웨그한 것이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