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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일제 무단통치 항거 이봉구 지사 독립유공자 포상

제74주년 광복절 맞아 건국훈장 49명, 건국포장 28명 등,
이중 생존애국지사는 1명, 여성은 10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오는 15일(목)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1919년 4월 경기 화성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받은 이봉구(李鳳) 지사와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기옥(朴己玉) 지사 등 178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49명(독립장 1, 애국장 8, 애족장 40), 건국포장 28명, 대통령표창 101명으로, 이 가운데 생존 애국지사는 1명(백운호, 89살)이며, 여성이 10명이다.

 

훈ㆍ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4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본인과 유족에게 수여된다. 15일(목) 중앙기념식에서는 포상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애국지사로 항일비밀결사에 참여하고 1942년 사회 질서와 안전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는 등 조국독립에 기여한 백운호 지사(대통령표창)가 직접 포상을 받을 예정이다.

 

 

또한, 1925년부터 제주청년연합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1931년 6월 비밀결사에 참여해 활동하다 체포돼 징역 5년을 받은 고 김한정 선생(남, 건국훈장 애국장)과 1920년 7월 프랑스에서 재법한국민회 제2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같은 해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하는 등 조국독립에 이바지한 고 홍재하(남, 건국훈장 애족장) 지사의 증손과 자녀가 각각 포상을 수여받는다.

 

여기에 1919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사무국 사리원 지국장으로 항일선전문을 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징역 7개월을 받은 고 제갈관오(남, 건국포장) 지사와 1929년 10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당해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백지동맹에 참여한 고 박기옥(여, 대통령표창) 지사의 손자와 자녀가 각각 포상을 받을 예정이다.

 

이번 포상을 포함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1,014명, 건국포장 1,308명, 대통령표창 3,367명 등 모두 15,689명(여성 444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유관기관과 사료수집 등 협업을 활성화하고,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독립유공자 발굴ㆍ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독립정신을 드높이는 노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격렬한 투쟁으로 무단통치의 폭압에 항거한 투사, 이봉구 지사(건국훈장 독립장)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중형을 받은 이봉구(李鳳九) 지사께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이 지사는 서울 순화동의 한 여관에서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1919년 4월 경기도 화성시 장안ㆍ우정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받고 큰 고초를 겪었다. 서울에서 3․1운동을 목도한 지사는 바로 고향인 장안면으로 내려가 1919년 4월 3일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 우정면 화수리 경관주재소 등을 공격ㆍ파괴하는데 앞장섰다. 지사는 화수리 경관주재소에서 일본인 순사를 처단한 뒤 2년 가까이 피신하였다가 1921년 1월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지사에 대한 포상은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1.4.15)과 『매일신보』(1921.1.23) 등 여러 건의 신문기사에서 활동내용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무단통치로 일컬어지는 1910년대 일제의 폭압에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다 만세운동 사건으로는 이례적이라 할 중형을 받은 사례다. 한편, 독립만세운동 당시 경기도 안성과 더불어 전국적으로도 격렬한 항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화성시에서 포상을 신청한 것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에 지방자치단체와 보훈처가 협업한 사례다.

 

 

 

❖ 사제(師弟)가 하나된 독립만세의 함성, 전주 신흥학교의 세 영웅

 

스승과 제자가 하나 되어 3․1운동에 참여한 전주 신흥학교(신흥고등학교의 전신)의 유병민(劉秉敏)ㆍ문병무(文秉武)ㆍ김경신(金敬信) 세분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유병민 지사와 문병무 지사는 전북 전주에서 미국 기독교계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흥학교(新興學校) 교사로 1919년 3월 초 학교와 인근 자택에서 제자인 신흥학교 학생들 십여 명을 대상으로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체포된 유병민 지사는 징역 1년을 받았고, 체포를 피한 문병무 지사도 궐석재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김경신 지사는 위 유병민ㆍ문병무 지사의 제자로 조선독립을 역설하는 두 교사의 역설에 공감, 1919년 3월 13~14일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과 시위군중과 함께 전주시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료학생 10여 명과 시내 교회를 순회하면서 “독립운동은 종교단체에서 주동하였으니, 예수교인들은 예배시간에 독립의 성취와 구금된 애국동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원하여야 한다.”고 연설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았다. 주목할 것은 김경신 지사의 독립운동이 3․1운동 참여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후에도 그는 1921년 11월 전주 동료의 자택에서 ‘워싱턴회의’(1921.11.12~1922.2.6)에 맞춰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유병민ㆍ문병무 지사에 대한 포상은 판결문(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919.6.24.; 12.24)과 「수형인명부」, 김경신 지사에 대한 포상은 판결문(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919.6.24; 1922.3.13, 대구복심법원, 1919.7.28.,1922.5.1, 고등법원, 1919.10.9.)과 「수형인명부」 등 행형기록에서 공적내용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한편, 세분은 전주시에서 포상을 신청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와 보훈처가 협업한 사례다.

 

 

❖ 한글과 국사(國史)의 수호와 보급에 앞장선 민족문화 지킴이, 권덕규 지사

 

 

식민지 지배의 엄혹한 상황에서 한글과 민족사의 수호와 보급에 앞장선 권덕규(權悳奎) 지사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권 지사는 1885년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1921년부터 서울에서 조선어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와 《조선유기(朝鮮留記)》 등을 펴내고 ‘한글사’를 설립(1927)했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 조선어학회 순회강연에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1934년 진단학회 찬조회원, 1935년에는 조선어사전편찬회 편찬 전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3․1운동 직후부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1940년대 이후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돌며 한글보급을 위한 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여 한글의 수호와 보급에 전력을 기울였다. 식민치하의 엄혹한 시기에 권덕규 지사의 한글, 민족사의 저술과 보급 활동은 ‘문화 독립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전남 나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기옥 지사

   서울에서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앞장선 최현수 지사

 

전남 나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기옥(朴己玉) 지사와 서울에서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앞장선 여성 독립운동가 최현수(崔賢守) 즈사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박기옥 지사는 1929년 10월 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등교길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해 전민족적 항쟁으로 번진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듬해 1월 시험거부 백지동맹 등 학내 항일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을 당했다. 지사에 대한 포상은 포상기준 개선에 따라 학적부 등에서 퇴학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지사가 희롱을 당한데 격분하여 일본인 학생들을 응징한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1990 애족장), 백지동맹(白紙同盟) 동지 이광춘(李光春, 여, 1996 건국포장)이 이미 포상을 받았다.

 

최현수 지사는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1930년 1월 서울에서 사립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격문을 필사하는 등 동료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정보보고(1930.1.15)에 따르면, 최 지사 등은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가담하게 된 이유에 대해 동료 학생들에게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사건에 관하여 현재 전국적인 문제로 부상하여 모든 학교에서 이에 동정하여 동맹휴교를 하고 있으나, 이화학교만이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는 것은 면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사회에서 배일학교로서 숭배를 받아온 체면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때에 반드시 뭔가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다는 말로 시위를 하도록 선동”했다고 한다.

 

지사에 대한 포상은 일제 정보보고(1930.1.15)와 신문조서(1930.1.19; 1.30), 신문기사 등에서 공적내용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지사와 함께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은 최복순(崔福順), 최윤숙(崔允淑), 김진현(金鎭賢) 지사에게도 이미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광복절 정부포상자 명단(건국훈장)

 

건국훈장 독립장 (1명)

이봉구 李鳳九 (3·1운동)

 

건국훈장 애국장 (8명)

권덕규 權悳奎 (문화운동), 김한정 金漢貞 (국내항일), 김흥식 金興植 (3·1운동), 박영문 朴泳文 (3·1운동), 이종필 李鍾弼 (국내항일), 전도선 全道善 (3·1운동), 황석현 黃奭顯 (만주방면), 황칠성 黃七星 (3·1운동)

 

건국훈장 애족장 (40명)

강평국 姜平國 (일본방면), 김경신 金敬信 (3·1운동), 김근식 金根植 (3·1운동), 김동섭 金東燮 (학생운동), 김복개 金福介 (만주방면), 김봉근 金奉根 (3·1운동), 김정국 金正局 (국내항일), 김정수 金丁洙 (3·1운동), 김종태 金鍾台 (3·1운동), 남호섭 南灝燮 (3·1운동), 문병무 文秉武 (3·1운동), 박금우 朴금우 (미주방면), 박병주 朴秉珠 (만주방면), 박종은 朴鍾恩 (국내항일), 박춘언 朴春彦 (의 병), 서도인 徐度寅 (국내항일), 서병돈 徐炳敦 (3·1운동), 서성칠 徐星七 (3·1운동), 서영완 徐永琬 (중국방면), 염준모 廉準模 (국내항일), 우용현 禹鎔鉉 (국내항일), 유병민 劉秉敏 (3·1운동), 유창덕 劉昌德 (국내항일), 유창열 劉昌烈 (국내항일), 윤덕룡 尹德龍 (국내항일), 윤학송 尹學松 (3·1운동), 이규직 李奎直 (3·1운동), 이완백 李完伯 (국내항일), 이혜근 李惠根 (노령방면), 임창모 林昌模 (미주방면), 전옥결 全玉玦 (3·1운동), 전홍기 全洪基 (학생운동), 정동화 鄭東華 (국내항일), 정암우 丁岩右 (일본방면), 정호근 鄭鎬根 (3·1운동), 조흥환 曺興煥 (학생운동), 최차도 崔次道 (학생운동), 현호옥 玄好玉 (일본방면), 홍재설 洪在卨 (계몽운동), 홍재하 洪在厦 (구주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