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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슬픔 안에서 즐기는 해학(諧謔)의 멋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별 후 3년이 지났네요”로 시작되는 춘향의 편지내용을 소개하였다. 신임 사또의 수청 강요와 춘향의 정절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옥에 갇힌 춘향이가 이 도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내용은 송서(誦書)체, 곧 책을 읽듯이 읽어 나가는데, 한자어가 많아 대강만을 짐작할 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약수(弱水) 삼천리에 청조(靑鳥)나 북해(北海) 만리에 홍안(鴻雁)은 편지를 전해주던 파랑새와 기러기였다는 이야기, 신관사또의 수청 요구에 참혹한 악형을 당해 오래지 않아 죽을 것 같으니 서방님은 높은 벼슬을 누리시다가, 이별 없이 사시라는 내용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러한 슬픔 속에서도 마냥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도 잠시 해학의 멋을 즐기는 것이 판소리의 매력이라 하겠다. 오늘은 <후원(後園)의 기도> 대목을 소개한다.

 

이 대목은 어사또가 된 이 도령이 남원의 춘향 집을 찾아와 담 밖에서 집안을 살펴보게 되는데, 마침 춘향 모친과 향단이가 촛불을 밝히며 정화수를 떠 놓고 간절하게 빌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몽룡 씨, 전라감사나 암행어사나 양단간에 수의허여 내 딸 춘향을 살려주오”, “아이고 하느님, 명천이 감동허여 옥중 아씨를 살려를 주오”라고 빌고 있는 춘향모와 향단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선영의 덕으로 어사 한 줄 알았더니마는 여기 와서 보니 우리 장모 씨와 향단이의 덕이 절반도 더 되는구나.”하는 점을 어사또가 느끼게 된다. 당장 내가 어사또가 되어 왔으니 춘향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지만, 그것은 재미없고 싱거운 진행이 아닐 수 없다.

 

어사또는 신분을 감추고 마치 걸인처럼 꾸며 춘향모를 부르고, 향단은 어떤 걸인이 찾아 왔다고 춘향모에게 전해 준다. 자신을 찾아온 걸인을 쫓으러 나오면서 춘향모와 어사또의 웃고 웃기는 대화가 시작된다.

 

“허허 저 걸인아, 물색 모르는 저 걸인, 알심 없는 저 걸인, 남원부 중의 성안 성외 나의 소문을 못 들었나? 내 신수 불길하야 내 딸 어린 춘향이 무남독녀 딸 하나를 옥중에 굳이 갇혀 명재경각(命在頃刻) 되었는듸, 동냥은 무슨 동냥? 눈치 없고, 알심 없고, 속없는 저 걸인, 동냥 없네, 어서 가소!.”

 

지금의 내 처지가 남을 동냥할 처지가 아니라며 어서 가라고 단호하게 쫓아내는 순간, 어사또가 들어서며 “동냥은 못 주나마 박작조차 깨란 격으로 구박 출문이 웬일이냐”라고 반박을 하며 말다툼이 시작된다.

 

이후, 이 도령은 “내가 왔는데, 자네가 나를 모르는가?” 물으면 춘향모는 “나라니 누구여, 나라니 누군가?”를 확인하려 한다. 김세종제 춘향가의 이 대목은 <잦은 중중몰이> 장단으로 비교적 짧고 점잖게 표현되고 있다. 아마도 양반층이나 고위층을 판소리의 감상자나 애호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설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다듬어 세련되고 품격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견주어 동초제 소리는 실제의 상황에 충실하기 위해 연극의 각본과 같이 짜여 있어서 더욱 사실적이다.

 

예를 들어, 문밖에서 어사또가

“이리 오너라,”를 외치니까 향단은 밖에서 누가 마나님을 찾는다고 하니,

“뉘가 이 정황 없는 사람을 찾는단 말이냐? 네가 나가서 마나님 안 계신다고 따 보내라, 보내”

향단이 충충 나오더니 “여보시오. 누구를 찾으시오?”

“너의 마나님을 잠깐 보러 왔으니, 너희 마나님 좀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우리 마나님 밖에 나가고 안 계시오”

“너희 마나님 안 계시거든, 서울 삼청동 이몽룡 씨 잘되라고, 지금 후원에서 빌던 그 양반 좀 나오시라고 여쭈어라.”

향단이 다시 들어와 “ 마나님, 여기서 비는 소리, 밖에서 그 사람이 다 듣고, 마나님만 꼭 나오시라고 그래요. 잠깐 나가 보십시오.”

“거 어떤 사람이 정황 없는 나를 오라, 가라 이리 요란스럽다냐?”

춘향모가 홧김에 나오겄다. 춘향모를 표현하는 명칭들이 춘향모친, 춘향 자친(慈親), 춘향 자당님, 춘향 대부인, 사나운 늙은이, 이도령 빙모, 어사또 장모, 등등의 다양한 표현이어서 청중을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이다.

 

춘향모의 “거 뉘가 날 찾나?”와 이 도령의 “나를 모르나”의 문답이 각각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자네를 어찌 알어?”

“허허 늙은이 날 몰라? 허허 늙은이 망령이여!”

“내 성이 이(李)가라 해도 나를 몰라? ”

“성안 성밖, 많은 이가 중 어떤 이가인 줄 내가 알어? 자네는 성(姓)만 있고 이름은 없는가? 이가라면 이 갈린다.”

“허허 장모 날 몰라? 우리 장모 망령이야,”

 

장모라는 호칭으로도 한참을 설전한 뒤에야 이 도령은 “한양 삼청동 사는 춘향 낭군 이몽룡”임을 밝히게 되고 춘향모는 한참 동안 말을 못 하더니, 우루루루루 달려들어 어사또 목을 안고 사위가 왔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걸인의 행세는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청중은 재미있게 공감하며 즐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