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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양양 낙산사 7층 석탑(보물 제499호)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양양 낙산사 7층 석탑

 

                                 시인 이 달 균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에 이를 때 만나는 절이 바로 낙산사다. 수평선이 시작되는 이곳 단애에 관음보살이 계셨던가. 그 물음을 안고 의상대사는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법력 깊은 기도가 통했던지 용에게 여의주와 염주를 받게 되고, “대나무가 솟아나는 꼭대기에 불전을 지어라.”라는 말씀에 따라 낙산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유서 깊은 절도 화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5년 4월 5일, 하필이면 식목일에 일어난 불은 홍련암 하나만을 남기고 죄다 태워버렸다.

 

누구도 제어 못 할 불기둥 속에서 탑은 저 홀로 걸어 나와 바다를 향해 섰다. 영생의 문은 이곳에서 비롯되는가. 이 죽음의 순간이 아니었으면 생명의 소중함을 어찌 알았으랴. 그래서인지 유난히 탑 앞에서 손을 모으는 이의 기원은 간절해 보인다. 이 7층 석탑도 조선 세조 때 낙산사 중창 당시 함께 세워진 것이다. 제아무리 석탑이라고 하나 그 화마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고, 표면이 균열되는 등 상당한 훼손을 입었다.

 

이 탑은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아 있어 연구자들에겐 중요한 탑으로 인식된다. 이 탑을 세울 땐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아 불교가 쇠퇴하던 무렵이다. 불교 조형 미술이 위축되었던 시기에 건립되었으므로 당시 탑의 양식을 엿보게 하는 의미 있는 유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