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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 시대 춤꾼, ‘도살풀이’의 최윤희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5회 한밭국악 전국대회>가 코로나 정국에서 <한밭국악회>와 <대전시>의 국악사랑으로 열렸으며 질서있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시상식장에 대전지역의 시민과 유지들이 참여하여 대회를 빛내 주었다는 이야기, 젊은 노래 그룹을 초대하여 젊은이들에게 전통음악과 춤을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 특히 <한밭국악회>의 현 이사장과 함께 초대 최윤희 이사장의 노고가 밑받침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최윤희 그는 누구인가? 이번 주에는 대전 <한밭국악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처음 이 대회를 개최한 도살풀이의 춤꾼, 최윤희 명무(名舞)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전통무용인들은 ‘이매방의 살풀이’ 또는 ‘도살풀이의 김숙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매방이나 김숙자, 두 명인은 이미 타계하였지만, 생전의 두 명무는 각각 <살풀이춤>의 대가로 활동했다는 말이다. 특히 김숙자는 경기, 충청의 <도당살풀이굿>에서 유래한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으며 최윤희는 이 춤으로 유명했던 김숙자 명인의 수제자이다.

 

 

 

우선 <살풀이춤>이란 어떤 춤인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살(煞)을 푸는 춤이란 뜻이다. 그러면 살을 푼다는 말은 또한 무슨 말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 무속신앙에 있어서 <살>이란 좋지 않은 기운, 해로운 기운을 의미한다. 그것은 질병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명예와 금전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풀이>는 이러한 좋지 않은 기운을 없애거나 풀어내는 무속의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살풀이춤>은 무의식의 살풀이와는 달리, 즉흥성을 지닌 무대예술로서의 춤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살풀이춤을 <즉흥무>라고도 하고, 수건을 들고 춘다고 해서 <수건춤>, 허튼 형식의 춤이란 뜻에서 허튼춤, 교방의 기녀들이 추었다고 해서 교방춤, 굿거리춤, 입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최윤희는 현재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는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스승과 각별했던 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가 스승님(도살풀이춤의 김숙자 명인을 가리킴)과 함께했던 그 시간은 그림자처럼 스승님과 하나였으며 스승님으로 동화(同化)되는 시간이었고, 저에게 오직 유일하셨던 스승님의 춤가락은 물론, 영혼까지 골수로 이어져 전승되어 온 소중한 사제(師弟)관계였습니다.”

 

최윤희는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16살 무렵, 1972~1974년까지 3년 동안, 충남 천안에 있는 무용교습소에서 유홍란에게 <살풀이>를 비롯한 고전 무용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워낙 춤을 좋아해서 텔레비전 화면이나 공연장 무대에서 누가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며 함께 춤을 추고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몸으로 자기감정을 들어내는 춤이 좋았고, 그래서 장단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올리고 발을 뗄 정도로 흥이 많았던 소녀였다.

 

 

이렇게 춤을 너무도 좋아하는 최윤희를 제자로 맞이한 유홍란은 그가 가르쳐 주는 대로, 때로는 가르치지 않은 부분도 능숙하게 표현하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새로운 춤 동작을 가르쳐 주면 밤낮으로 연습하며 스스로 만족해하는 제자를 보며 “저 끼 많은 소녀를 자신이 제자로 키우는 것보다 자신보다 더 큰 선생, 더 유명한 선생에게 보내 주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흔히 악기를 지도하거나, 소리 전공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재주가 특출나거나 돋보이는 학생들은 본인이 끼고 가르치려고 하지, 나보다 더 능력있거나 큰 선생에게 보내주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또 다른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도, 선생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아 더 배우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러한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최윤희를 가르치며 보통의 소녀가 아님을 알게 된 유홍란이 최윤희를 당대 도당굿 살풀이의 일인자인 김숙자 명무에게 보내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김숙자 선생 문하에는 제자가 없었기에 최윤희는 아예 선생 댁에 기거(寄居)하면서 거의 혼자 5년 동안 춤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선생에게는 학생들이 없어서 때로는 최윤희 자신이 학생과 가정주부 등 10여 명의 수강생을 모집하여 선생께는 춤을 배우고, 배운 춤은 다시 제자들을 가르치는 조교의 역할까지 하였다.

 

그 당시 김숙자 명무의 생활공간이기도 했던 학원은 외부의 공연계획이나 수강생들의 숫자가 적어서 학원 운영이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여름보다도 특히 동절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없는 집의 살림이다. 가끔 손님들이 드나들었는데, 그 가운데 국악인으로는 박동진, 박귀희, 한농선 등이 방문했다고 한다.

 

최윤희는 김숙자 선생의 문하에서 5년여 동안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으나, 외부의 공개행사나 경연대회에 나가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 자기의 춤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가 없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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