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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실장사 강간난 지사가 서대문형무소에 잡혀간 까닭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여성독립운동가들(1)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강간난(姜干蘭) 지사는 1908년생이니 살아계시다면 올해(2020) 112살이다. 강간난 지사의 기록을 발견한 것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이하 인물카드>에서 였다. 황해도 평군 고북면 서오리가 고향인 강간난 지사는 1942년 7월 9일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6월에 처해져 그해 7월 17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아래 사진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942년 6월 5일 찍힌 사진이다. (제53977번)

 

 

가르마를 곱게 타서 쪽진 모습의 얼굴은 화장기가 없지만 고운 자태다. 흰 한복 저고리 앞섶에는 죄수용 사진을 알리는 한자 이름이 붙어 있고 강간난 지사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34살의 강간난 지사에 대한 정보는 직업이 실행상(絲行商)이라는 것과 본적이 황해도, 주거지는 경기도 경성부 창신동(이하 불명)이라는 것밖에는 없다. 고향인 황해도에서 언제 경성으로 올라왔는지, 가족은 있는 것인지 등등 강 지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인물카드 한 장뿐이다.

 

 실장수(絲行商)인 강 지사가 어째서 일제 경찰에 잡혀갔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잡혀들어간 죄명은 ‘국가총동원법’이다. 실장수를 왜 잡아들인 것일까? 잡아들여  징역을 6개월이나 때렸다.  잡혀들어간 강 지사도 그렇지만  혹시 강 지사  집에는 올망졸망한 어린 자식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팔자 사납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고 거기에 늙고 병든 시부모까지 봉양 중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머리 밑이 빠질 정도로 무거운 실 꾸러미를 이고 경성의 골목골목을 누빈 것은 아닐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든다. 사실, 이 무렵 여성들은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갖은 행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40년 3월 17일 동아일보에는 행상길에 나선 여성 기사가 눈에 띈다. “강화 여인들 남만주까지 인조견(人造絹) 행상에 나서” 라는 제목이 그것이다. 이 무렵 2천 명의 강화 여인들이 만주에 가서 비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강화 여인들은 손수 누에를 길러 비단을 짜서 이고 지고 만주까지 팔러 나갔다. 이를 일컬어 이천홍군부대(二千紅軍部隊)라는 표현까지 썼다.

 

여기서 한가지 드는 의구심은, 왜 가까운 경성에 올라와서 팔지 않고 만주까지 갔을까 하는 점이다. 이게 바로 흉악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관계가 있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1938년 4월 1일, 일본에서 공포했다. 그리고 1달여 뒤인 5월 10일 조선에도 바로 적용했다. 국가총동원법이란 말 그대로 전시(戰時)에 모든 물자ㆍ산업ㆍ인원ㆍ단체ㆍ근로조건ㆍ생산ㆍ유통구조ㆍ출판ㆍ문화ㆍ교육을 통제ㆍ징발ㆍ징용할 수 있게 한 법이다. 국가총동원법을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하면 첫째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통한 내선일체화이며, 둘째가 전시(戰時) 체제의 확립이다.

 

예컨대 애국일(愛國日, 일본 국경일 등 기념일)에는 조선인 누구라도 ① 신사참배 ② 황거요배(皇居遙拜, 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함) ③ 국기게양(일장기) ④ 국가제창(일본국가) ⑤ 강화(講話, 설교를 들어야 함) ⑥ 황국신민의 서사(皇國臣民의 誓詞) 제창 ⑦ 천황폐하를 위한 만세삼창을 해야 한다.

 

 

한편 전시체제를 포함한 일상에서는 국산품애용, 소비절약, 국채응모, 비상시 국민생활 기준양식 실행, 군수품 공출, 근로증가, 의식주의 간단화, 허례폐지, 연회제한, 절주절연의 습관 양성, 시간존중, 근로보국정신의 함양, 저축의 장려 등 규제가 끝이 없다. 이러한 각종 규제를 어기면 이른바 ‘국가총동원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간난 지사는 왜 걸려든 것일까? 바로 전시(戰時) 하에 피복(皮服)용으로 써야 할 실행상(絲行商)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시(戰時) 용품 가운데는 1942년 9월 8일, 조선 전국에 내린 금속용품도 해당한다. 태평양 전쟁이 절정에 달하자 일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끌어모았다. 건물의 쇠 난간, 철제 가로등을 비롯해 관공서와 학교의 쇠 울타리, 집에서 쓰는 가마솥, 놋그릇, 놋수저, 촛대, 절의 범종까지 공출됐다. 여기에 불응할 때는 가차 없이 ‘국가총동원법’에 저촉되어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강화도 여인들이 경성을 버리고 만주로 손수 짠 비단을 팔러 떠났을 것이다. 경성보다는 감시가 덜했을 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강간난 지사처럼 국가총동원법에 걸려든 조선인은 몇 명이었을까?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상에는 511명이 걸려든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다. 일제가 1945년 8월 15일 패망으로 퇴각하면서 불태워버린 인물카드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일제 경찰이 제작한 인물카드 6,264건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ia0) 누구나 이 사이트를 통해 일제가 조선에서 저지른 온갖 참상에, 저항한 조선인들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