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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제비는 돌아왔건만 온다던 님은 소식도 없고

윤승희 <제비처럼>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3]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1)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분홍 아지랑이로 버디기재 마루가 가물거리고

강 건너 큰골 장끼소리 빨랫줄 타고 내 귀에 꽂히면.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마른버짐 얼굴에 뭉게뭉게 피어나고 기계충* 꽃 까까머리에 빨갛게 피어나면.

 

“할머이, 제비는 운제 와?”

이제 제비만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나의 이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아

하늘님이 제비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라고 시킬 것 같았다.

그러면 뜬구름으로 떠도는 아부지도, 돈 벌러 서울로 간 어머이도 돌아와

온 식구가 오순도순 한 군데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똥 앉은 꽁보리밥은 더는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

제비가 와야 한다.

홍매화 지는 창가에서 내다보니 아직은 메추라기와 직박구리 같은 겨울새나 텃새들만 보이지만 밭가에 냉이꽃 피고 개구리 소리 들려오니 제비도 곧 오겠지.

그래야 제대로 갖춰진 봄이라 할 수 있겠지.

과연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지을까?

우리가 거들어 줄 방법은 없을까?

쑥국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며 눈이 동그래진 아내에게

숟가락을 손에 들고 아침부터 제비 얘기만 해댔다.

 

(3)

그래, 어쩌면 그때 이미 나는 은하수를 건넜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었다.

열 살 묵은 머리통이면 “흥부의 박씨”가 현실에 없다는 것쯤은.

그런데도 나는 새벽마다 귀를 세우고 제비를 기다렸다.

그 뒤로 나의 삶은 제비를 기다리는 삶이었다.

공부하고 음악을 전하고 글을 쓰는 모든 것들이 제비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이제 나는 제비를 찾아 너무 멀리 떠나왔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그때 은하수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가

다시 건널 수 없는 다리라는 걸 멀리 떠나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름을 날리고, 힘을 얻고, 돈을 많이 벌고 하는 것들을

그때 이미 지우개로 문질러 버렸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나의 참모습을 찾는 길,

삶의 참 가치를 찾는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4)

세상은 죽솥이다.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 휘저어지며 죽이 되어간다.

제갈량 같은 지략가, 사마의 같은 위선자, 조고 같은 간신, 악비 같은 충신,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천재, 마키아벨리 같은 현실주의자, 범여 같은 예지자, 석숭 같은 돈벌레... 모두들 그렇게 어우러져 눋고 퍼지며 죽으로 익어 가는데 나는 어쩌다 그 가마솥에서 튕겨나오는 쌀 알갱이가 되었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부뚜막에서 말라비틀어진다 해도 그렇게 죽이 되긴 싫었다.

 

오늘도 나는 박씨를 물고 올 제비를 기다린다.

박속에서 미생처럼 순진한 사람, 완적처럼 곧은 사람, 테레사 수녀처럼 사랑 많은 사람, 삼중스님처럼 인자한 사람, 황희처럼 청빈한 사람, 천상병처럼 해맑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서로서로 어루만져 주는 세상, 다툼 없는 세상으로 봄을 완성시켜 주길 바라며.

 

 

제비처럼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래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후렴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70년대를 대표하는 톱모델 윤승희는 1956년에 태어나 항도 부산에서 자랐다. 해운업을 하는 부친 덕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풍랑을 만나 부친이 실종되자 가세도 함께 기울어 어렵게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교 졸업 후 서울 이모 집에 머물 때 주변의 권유로 모델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연예인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그녀가 입문하던 1975년 당시에 우리 패션계는 타 연예분야보다 짧은 역사로 인해 무척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윤승희보다 여덟 살 정도 위인 루비나(박상숙)의 선전으로 모델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루비나는 <한 마디만 말해주>라는 노래로 모델ㆍ가수 겸업의 길을 터놓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서 1976년에 <엄마랑 아빠 같이>를 히트시킨 윤승희는 이듬해에 <제비처럼>을 빅히트시키기에 이른다. 공식집계가 어렵던 시절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80만 장 팔렸다는 후문이 돌 정도로 대단한 성공이었다.

 

*기계충- 머리에 나는 피부병. 이발기계를 통해 옮긴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