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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호의 한시 산책 4] 노진과 강릉기생

[그린경제=제산 기자]

노진과 강릉기생


◑산 넘고 물 건너 장가길 천리

여기는 강릉도호부. 부사가 대청마루에서 기생 서너 명과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래 네가 예까지 나를 찾아온 연유가 무엇이냐?”

부사는 통인의 안내를 받고 들어온 애띈 초립동에게 퉁명스럽게 묻는다.

“당숙. 우선 제 절부터 받으시지요.”

초립동은 나붓이 큰절을 올리고 나서 어머니의 심부름이라며 서찰을 꺼내 올린다. 서찰을 읽는 부사의 표정이 굳어진다.

“참으로 얌체들이로군.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총각은 눈이 캄캄해진다.

“너 듣거라! 관청은 공무가 아니면 함부로 들어오는 법이 아니다. 이곳은 네가 사사로이 머물 데가 못 된다. 시장할 테니 요기나 하고 가거라.”

동기(童妓)하나가 한쪽 구석에 밥상을 차려준다. 개다리소반에 노잣돈 몇 닢과 함께 밥 한 그릇과 나물 몇 가지가 전부다. 부사의 식전방장(食前方丈)의 주안상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부사는 당질에 대한 덕담이나 가족에 대한 안부는 한마디도 묻는 법이 없고 그저 기생들과 수작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순간! 초립동은 발로 밥상을 냅다 걷어찼다. 밥상이 천정까지 치솟았다가 마루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 산산이 흩어진다.

“네 이놈 이게 무슨짓이냐?”

“당숙 내가 거지로 보이시오?”

“저런 발직한 놈 봤나?”

“목민관이라는 자가 공무시간에 기생들하고 술판이나 벌이면서 천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찾아온 당질을 이렇게 냉대해도 되는 것이오?”

“뭣이라? 목민관이라는 자가 ? 당장 나가거라! 이놈! 나는 너 같은 당질을 둔 적이 없다.”

“나도 당신 같은 당숙을 둔 적이 없소이다. 다시는 안 찾아 올 테니 벽에 똥칠할 때까지 배가 터지게 잘 먹고 잘사시오!”

 

   
▲ 노진을 배향한 남원의 창주서원


 ◑초립동의 기개에 반한 여인

총각은 분에 복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물러갔다. 총각의 이름은 노진(盧禛)이다 함양에 있는 풍천노씨 명문의 후예였으나 여섯 살 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남원의 순흥안씨(順興安氏)집 규수와 정혼을 해놓고 혼수를 마련할 길이 막연했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어머니가 구술하신 대로 받아 쓴 언문편지 한 통을 가지고 강릉부사로 재직하는 당숙에게 혼수비용을 변통하러 갔다가 면전 박대만 당하고 쫓겨난 것이다.
‘내가 경솔했어! 무릎을 꿇고 사정이라도 할 것을, 어머니를 무슨 낮으로 뵈올까?’ 가벼운 후회와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도련님!” “도련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묘령의 여인이 노진을 향해 종종걸음을 쳐 오고 있는게 아닌가?.

“부인은 뉘시오?”

“도령님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

“저는 조금 전에 사또 곁에서 술시중을 들던 기생 소향(素香)이예요. 저는 도령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를 따라온 까닭은?”

“저는 도령님의 기개에 놀랐어요. 어쩌면 서슬이 퍼런 고을의 관장 앞에서 그렇게도 당당하셨어요? 도령님 같은 분은 저 처음 봤어요.”

그건 그랬다. 그 시대의 관장은 3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요샛말로 하면 시장, 경찰서장, 검사, 판사의 직위를 모두 겸직한 막강한 자리였다.

“도련님. 해가 저물었어요. 저의 집으로 함께 가요.”

노진은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천리타향에서 만난 소향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운우의 정을 나누고 사랑을 맹세했다. 노진은 18세, 소향은 17세, 모두가 꽃다운 나이였다. 꿈같은 며칠이 흘렀다. 노독이 풀리자 노진은 귀향길에 올랐다.

“서방님 꼭 성공하시어요!”



◑값진 사랑의 열매

   
▲ 노진의 문집 <옥계집(玉溪集)>
열흘도 더 걸어서 집에 당도하니 어머니가 화색이 만면하여 맞아주신다.
“얘야, 네 당숙이 인편에 서찰을 보내주셨더구나.”

“당숙께서요? 그럴 리가…”

그것은 뜻밖에도 소향이 보낸 것이었다.

‘서방님 저는 서방님과 작별한 날로 기적에서 탈퇴했답니다. 인편에 어음을 보내드리니 혼수비용과 과거준비에 보태 쓰십시오. 그리고 등과하시기 전까진 절대로 소첩을 찾지 마십시오. 십년이고 백년이고 서방님을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청운의 꿈을 이루시옵소서!’ / 소향 올림

노진은 감동했다.

‘소향은 범상한 기생이 아니로구나! 나를 이토록 사랑할 줄이야!’

노진은 소향이 보내준 돈으로 혼례를 잘 치렀다. 그리고 신혼의 단꿈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남원의 운봉 옥계동에 있는 암자에서 과거준비에 몰입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아 20세에 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고 29세에 드디어 대과에 올랐다. 소향과 사랑을 맹세한 지 꼭 십일년 만이다. 노진은 소향을 찾아갔다. 그러나 소향은 집에 없었고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 있었다. 노진은 소향을 수소문하여 연통을 보냈다. 그런데 그녀의 회신 내용이 예상 밖이다.
‘서방님 반년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없겠는지요? 소첩은 현재 불제자의 신분이라 계를 어길 수 없답니다. 머리를 기르고 환속한 뒤에야 서방님을 뵈올까 합니다.’ ‘ 하루가 삼추 같은데 반년이나 기다리라고? , 노진은 할 수없이 반년을 기다려서 소향과 만났다. 두 정인은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감격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참고> 이이야기는 필자가 수십년 전 어느 잡지에서 읽은 것인데 너무 오래되어 애석하게도 그 출전을 기억할 수가 없다. 기생의 이름도 잊어버려 소향(素香)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流下 洛東江 連日 宿舟中有作

(유하 낙동강 연일숙주중유작)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며 연일 배 안에서 자면서 짓다.

江天夜雨霽
○○ㄱㄱㄱ
雲月蘸微明(庚)
○ㄱㄱ○◎
宿鷺驚寒渚
ㄱㄱ○○ㄱ
游鳞戱綠萍(庚)
○○ㄱㄱ◎
籌燈遙店小
○○○ㄱㄱ
蘆荻遠洲平(庚)
○ㄱㄱ○◎
夢罷孤舟裏
ㄱㄱ○○ㄱ
塵緣覺已輕(庚)
○○ㄱㄱ◎

(강천야우제)
강과 하늘에 밤비 개고,
(운월잠미명)
구름에 잠긴 달이 미명에서 벗어 날 때.
(숙로경한저)
잠든 해오라기는 찬 물에 놀라 깨고,
(유린희록평)
물고기는 개구리밥을 툭툭 치며 노닌다
(주등요점소)
저 멀리 작은 주막집엔 가물가물 초롱불,
(노적원주평)
질펀한 모래톱은 아스라한 갈대 숲.
(몽파고주리)

외로운 배안에서 몽환(夢幻)을 깨치니
(진연각이경)
진세의 인연도 부질없는 것이런가?

Everyday Poem While Following the Stream of the Nak Dong River

 

At the river the night rain stopped,
Dim light from the moon came down through the clouds.
An old white heron surprised by the cold river,
A fish swims to flirt with the blue duckweed.
The stage light from a faraway pub shining,
Reeds and silver grasses grow densely along the sands.
Awaking from a dream in a lonely boat,
An awareness of nothingness tying to the world.

No Jin, aka Ok Gye (1518 ~ 1578) Minister of the Interio

 주해(註解)
1)운월 : 구름에 가리운 달 2)잠(蘸) : 담글잠

◑노진약력
노진
(盧禛). 1518(중종13) ~ 1578(선조11).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 본관은 풍천(豊川). 시호는 문효(文孝). 22세에 성균관에 유학 김인후 노수신 등과 더불어 도의로써 사귀었다. 명종1년(1546)에 별시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예문관제학을 역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효도로 정문이 세워지고 함양의 당주서원과 남원의 창주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