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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단군조선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고유의 칠성신앙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1)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이제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우리 전통 무속신앙의 전문가로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와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를 하고 있는 양종승 박사가 칼럼을 쓰게 됩니다. 이 칼럼의 목적은 한민족 역사 문화 뿌리인 무속신앙의 이론과 실체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종교 심성을 파악하고 슬기를 모아 보다 낳은 삶을 개척해 나기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한국 고유의 칠성신앙은 단군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삼신신상으로부터 전개되었다. 하지만 우리 칠성신앙을 중국 도교로부터 유입된 외래 칠성신앙과의 차이점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도교가 들어온 전후 상황 그리고 전개 양상을 비롯하여 관련자료 및 현재적 전승자료 등을 참고하여 살펴보면 그에 대한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국 고유의 것은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도교의 그것과는 달리 단군조선으로부터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한민족 고유의 별신앙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실체를 무교의 신앙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칠성신앙의 핵심수 칠()과 관련된 단군신앙의 핵심수 삼()은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진 무교의 가장 근본수로서 무속의례 바리공주 서사무가, 성주 모시기, 제물차림의 삼색나물과 사실 받치기 신구(神具) 등에서 시작, 완성, 안정, 조화, 변화, 신성 등을 상징화하면서 활용되고 있다.

 

삼신(三神)를 기반으로 한 신앙 형태가 칠성을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칠성신앙은 도교로부터 전입된 것이 아니라 무교의 삼신신앙의 영향 아래 성립되어 한국 고유의 것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그리고 중국 도교의 칠성신앙은 한국 고유의 민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지만, 한국의 본디 것과는 별개 영역 하에 도교문화로 계승되어 졌다.

 

칠성에 대한 한민족의 믿음은 오래되었다. 단군조선시대의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것이나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다량의 북두칠성 형상이 발견된 것이 증거들이다. 주목되는 것은 고분벽화 속에 수백여 개나 그려진 별들이 고구려인들의 천문과 이상향에 대한 꿈이 결합된 소우주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2008).

 

우주와 천체 현상에 대한 고대 한국인들의 우상과 믿음은 별신앙이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 시기는 도교가 한국으로 유입되기 훨씬 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과정은 적어도 고구려가 1세기 초부터 기원 후 7세기 중엽에 이르는 근 800년간 고조선과 부여의 풍습을 이어받는 과정 속에서 전개되었다(주영헌, 고구려 벽화무덤에 대하여, 고구려 고분벽화1986).

 

그러면서 이 시기, 한반도의 국가는 문화를 비롯한 정치 경제 군사 등의 모든 분야에서 독창성을 갖고 문명국의 일로를 개척해 왔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 고유문화이며 그 수많은 유산들 중 한 부분이 고분벽화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민족 고유의 별신앙은 광개토대왕을 위시한 고구려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천손민족이라하여 북두칠성 자손임을 밝히는 데까지 이어졌다. 광개토대왕비 상단과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상단에 한결같이 정()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이곳에 북두칠성이 존재하는 곳임을 의미한다(최인호, 왕도의 비밀1995).

 

그리고 여기서의 정() ()는 백두산 천지와도 연관되어 있는 걸로 추측된다. ()의 위치는 곧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상의 영지(靈地)이기 때문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어 마치 흰 머리와 같다하여 명명된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2,750m 산 일 뿐만 아니라 지리산에 이르기 까지 백두대간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의 모든 산을 뻗어 내리게 한 민족의 영산이다.

 

따라서 북두칠성이 존재하는 곳과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고대로 칠성에 대한 믿음이 성숙되어 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백두산은 곧 단군(檀君)을 탄강(誕降)시킨 성산(聖山)이라는 점에 더욱 주목된다. 이는 단군이 별신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민족 고유의 삼신신앙과도 연관되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은 특히 무교 및 민간신앙 현장에서 독특한 양상을 보이며 전승 발전되어 왔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장독대 칠성단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칠성님에게 소원을 빌었던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민가에는 장독대가 곧 칠성단이 되어 언제든지 첫 새벽에 길은 맑고 정한 우물물을 떠서 정안수로 올려놓고 소원을 빌던 터전으로 삼아졌다.

 

아기가 태어나 때가 되면 만신 신당에 명다리를 걸었는데 그 나이가 칠성에서의 상징수 칠()을 상징하는 일곱 살이어야 했다. 집을 새로 짓거나 옮기게 되면 성주를 새롭게 모시게 되는데 성주를 받을 대주 나이가 중요했다. 서른일곱, 마흔일곱, 쉰일곱 등 대주 나이 끝수가 일곱에 해당되어야 성주를 모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적으로 성주가 칠성신앙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장례풍습에서도 칠성은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게 되면 관에 들어갈 정도 크기의 널판으로 칠성판을 만들어 시신을 눕혔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갈 때는 칠성판을 짊어지고 간다라고 한 것이다.

 

칠성판은 기다란 널판으로 만드는데 여기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구멍 7개를 뚫거나 또는 별자리 무늬를 그렸다. 그리고 주검은 일곱 매듭으로 묶여져야 했다. 방상이나 무덤 앞의 석인과 같이 광중의 사귀를 쫓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생을 다한 칠성 자손은 본디의 자리 칠성 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죽음을 구제받고 저승에서의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