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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말복, 내 스스로 더위가 되어볼까?

[한국문화 재발견] 복날의 세시풍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이다.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이 복날을 '서기제복'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 서기제복에서 '()'은 꺾는다는 뜻으로 써서 복날은 더위를 피하는 피서가 아니라 정복한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때를 '개의 날(dog's day)'라고 부른다.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인데, 이 별은 삼복 기간이 되면 해와 함께 떠서 함께 진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삼복 때 태양의 열기에 가장 밝은 시리우스의 열기가 보태졌기 때문에 한해 가운데 가장 덥다고 생각했다.

 

복날 즐겨 먹었던 먹거리는?

 



말복(末伏)은 입추가 지난 뒤지만 아직 조금만 움직이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때다. 이렇게 더위가 한창일 때 우리 겨레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을까? 먼저 여름철에는 지나친 체열의 손실과 땀의 많은 분비 탓에 체액과 나트륨 손실이 있게 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수박화채에다 소금을 뿌려 먹었으며, 복숭아에 소금을 쳐서 끓여 받친 즙으로 지은 밥인 반도반(蟠桃飯)”을 먹었다. 또 여름엔 땀으로 몸 안의 질소가 많이 나오므로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데 콩국수는 이에 좋은 음식이다.

 

한편 여름철은 청량음료를 너무 많이 먹어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장애가 심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식초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식초는 산성화 체질을 막아주며, 여름철 음식 변질에 따른 식중독도 미리 막아주고, 물갈이로 배탈 설사가 나지 않게 하거나 손쉽게 치료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식초를 넣은 미역냉채는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이다.

 

이밖에도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초복에서 말복까지 먹는 풍속이 있었다. 또 국수를 어저귀(아욱과에 딸린 한해살이풀)국에 말아먹거나 미역국에 익혀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부쳐 먹거나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 먹기도 하는데, 모두 여름철에 시절음식(時節飮食)으로 먹는 소박한 음식들이다. 그밖에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을 만들어 먹고, 닭죽, 육개장, 영계를 곤 국물인 임자수탕, 민어국, 염소탕, 장어백숙, 잉어, 오골계를 먹었으며, 잉어와 오골계로 끓인 용봉탕, 미꾸라지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끓여 두부 속에 들어가게 한 도랑탕, 미역초무침, 메밀수제비, 죽순, 오골계와 뜸부기, 자라탕, 메기찜 등이 있습니다.

 

별미음식에는 원미죽(元味粥)이란 것도 있다.

 

조선 말기에 펴낸 글쓴이를 모르는 요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장국원미죽과 소주원미죽이 나온다. 장국원미죽은 먼저 맷돌에서 쌀알이 반씩 갈라질 정도로 간 다음 체에 쳐둔다. 이렇게 만든 싸라기에 곱게 다진 쇠고기와 표고버섯, 석이버섯, 느타리버섯, 파 등을 넣고 만든다. 또 소주원미죽은 싸라기로 죽을 쑨 다음 약소주와 꿀 생강즙을 넣고 다시 끓인다. 약소주는 소주에 용안육(龍眼肉, 영양가가 많고 단맛이 나는 과일인데, 식용약재로 씀)구운 대추인삼 등을 넣고 50여 일 우려낸 술이다.



 

이 원미죽은 1938617일 치 동아일보에 여름철 별미인 조선음식 몇 가지라는 기사에도 등장했다. 원미죽은 시원하게 얼음을 띄워 먹는데 소화가 잘되고 식욕을 돋우며, 보양 효과가 있는 여름철 별미 음식의 하나다. 우리 겨레는 여름에 보신탕, 삼계탕, 용봉탕, 임자수탕 같은 이열치열의 음식과 함께 원미죽처럼 시원한 보양식도 먹었다.

 

그런가 하면 복날 우리 겨레는 예부터 개고기를 즐겼는데 그 까닭이 무엇일까? 먼저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사기에 이르기를 진덕공 2년에 처음으로 삼복제사를 지냈는데, 사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해충으로 농작물이 입는 피해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 만큼 개고기를 일찍부터 식용으로 썼음을 말해준다.

 

또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요리책인 규곤시의방에는 개장, 개장국누르미, 개장찜, 누런개 삶는법, 개장 고는 법 등 예부터 전해오는 우리 고유의 개고기 요리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17세기 중엽에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도 개장”, “개장꼬치누루미”, “개장국누루미”, “개장찜”,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등이 나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상차림에 구증(狗蒸, 개고기찜)이 올랐다는 것을 보면, 개고기는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라가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농가월령가>에는 며느리가 친정에 갈 때 개를 삶아 건져 가는 풍습이 나온다. 조선시대엔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얘기다.

 

이에 견주면 이들 문헌에는 돼지고기 조리법으로 야저육(野猪肉) 곧 멧돼지고기 삶는 법이 2, 가저육(家猪肉) 곧 집돼지고기 3줄이 전부로 간단하게 기록되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당시에는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즐겨 먹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개고기는 우리 겨레의 오랜 먹거리문화임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몸이 좋아진다는 맹신은 삼가야 한다.

 

정조임금의 백성사랑 척서단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곳에서 감독하고 일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약을 지어 내려 보내니,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알 또는 반 알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위는 정조실록18(1794) 628일 자 기록으로 정조 임금이 화성을 쌓는 공사장의 일꾼들이 더위에 지쳐 몸이 상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더위를 씻어주는 척서단(滌暑丹) 4천 정을 지어 내려보냈다는 내용입니다. 혹독한 말복더위가 대지를 달구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 못 들게 하는 날이 이어져 자칫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절대군주였던 정조임금은 낮은 자세로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여 척서단이란 약까지 만들어 나눠주었는데 이처럼 무더위 일수록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다면 불쾌지수 쯤은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말복 때가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그 때문에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은 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벼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농사꾼들의 마음과 닿아 있다.

 

한편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가 맑아야 대추열매가 잘 열린다. 그런데 이날 비가 오면 대추열매가 열리기 어렵고, 결국 대추농사는 흉년이 든다. 따라서 대추농사를 많이 하는 이곳의 사정과 맞닿아 있는 말이다.


 

지금이야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에어컨과 냉장고가 있어 쉽게 여름을 날 수 있지만 예전이야 꿈도 못 꿀 이야기다. 더구나 훌훌 옷을 풀어헤칠 수도 없었던 선비들은 그저 솔바람 부는 정자에서 책을 읽거나 죽부인과 함께 잠들었을 뿐이다. 또 탁족(濯足)이라 하여 계곡에 들어가 발을 씻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바닷가 백사장에서는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禪師)네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했다는데 그 말처럼 우리 자신이 더위가 되어 큰 더위 곧 대서와 마주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