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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연변과 서울, 열 하고도 아홉 번째의 만남

[국악속풀이 32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틍소잽이 동선본의 독주회 이야기를 하였다. 퉁소 생활 45년을 기념하고 퉁소음악의 확산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준비된 음악회였다는 점, 퉁소는 듣기는 좋으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해 전승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란 점, 퉁소는 단소에 비하면 보다 굵고, 긴 형태이고, 청공(淸孔)이 있어 대금과 유사하다는 점, 기록에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주로 당악(唐樂)계 음악에 편성되어 왔지만, 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 도 쓰이기 시작하였으나 현재에는 민속음악에만 쓰이고 있으며, 특히 시나위나 산조, 함경도의 북청사자놀음에 반주음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동선본이 퉁소와 인연을 맺게 된 연유도 함경남도 북청에서 월남한 부친의 영향이 컸으며 본격적으로 북청사자놀음에 입문해서는 신선식, 전준식, 마희수, 김영곤, 변영호 명인들에게 직접 사사를 받아 현재 국가문화재 전수조교로 퉁소와 함께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는 점, 앞으로 퉁소음악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공연활동, 음원개발, 음반제작, 등 퉁소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2017630, 한국의 전통음악학회와 중국의 연변예술대학이 공동으로 개최한 전통음악의 학술 및 실연교류회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이 행사는 양 측이 해마다 여름, 한 차례씩 중국 연변예술대학에서 만나온 정례모임이다. 민족문화 유산을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길에서 더욱 공고한 초석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을 정도로 그동안 양 측은 해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알찬 결실을 맺어 왔던 것이다.


   

이 행사를 이끌어 온 필자의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이를 극복해 오면서 19차 대회를 치루었다고 하는 감회가 남다르다.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시작한 행사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시작된 교류행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기간 지속되리라고는 필자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점이 솔직한 고백이다.

 

19912월이니까, 26년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국립국악원에 근무하던 고 황득주 거문고 명인이 당시 한국에 와서 유학생활을 하던 연변대학의 전화자 교수와 동행하여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자연스레 전교수로부터 연변의 여러 정황을 물어 알 수 있었다. 가령, 연변에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예술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학교에서는 전통민요를 가르치되, 남한식의 창법이 아닌, 북한식의 높고 가성이 섞인 창법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판소리도 있으나, 남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사실, 춤도 가르치고 있고, 가야금이나 피리, 장쇄납, 저대, 해금과 같은 악기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작곡이나 이론교수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그 중에는 특히 김죽파 가야금 산조를 이야기 할 때, 자주 오르내리든 김진 교수의 이름도 나왔다.

 

김진 교수가 누구인가? 연변대학에 교수로 있으면서 북한에 유학하여 그곳에 월북해 있던 남쪽의 국악인, 안기옥이나 정남희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웠던 사람이 아니던가. 또한 안기옥은 전라도 지방의 가야금산조 창시자로 꼽는 김창조의 수제자로, 가야금산조는 물론이고, 판소리나 병창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평양에서 안기옥으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운 뒤, 연변대학으로 돌아온 김진 교수는 많은 제자들을 길렀는데, 현재 중국의 비물질 문화재 <가야금예술>의 보유자로 있는 김성삼 교수나 한국에서 25현 가야금 음악의 연주와 작 편곡으로 유명한 김계옥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전화자 교수는 연길시의 <조선족예술단>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 단체에서는 어떤 형태의 음악과 춤을 보존하고 있을까? 당장 공연 형태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앞섰으나, 당시는 중국과의 국교수립 이전이어서 방문하는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여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여름, 필자를 단장으로 하는 방문단 16명은 서울을 출발하여 홍콩, 북경, 장춘을 경유해 길림예술학원(吉林藝術學院) 연변분원(延邊分院)이란 간판이 선명하게 붙어있던 당시의 예술학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제1회 교류행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첫 만남에서 우리들은 전통음악의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보존, 계승문제,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고, 준비해 간 각종 악보나 음반, 논문집이나 저서 등 교육 자료들을 증정하였다. 그리고 수업참관이나, 시범연주, 공개 강습이나 교류공연 등등 1주일간 다양한 경험과 교류를 가질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해 우리를 안내해 주는 연변대 교수들과의 친숙해 진 우리들은 어떠한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해도 이 교류행사를 계속하기로, 아니 당장 다음해부터 시작하기로 굳게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행사를 주도하던 연변대학의 정준갑 부원장이 갑자기 병사하게 되고, 우리 쪽에서는 나와 호흡을 맞추어 열심히 준비하던 실무자 격의 황득주 명인이 유명을 달리 하는 등, 변고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 말고도 여러 가지 여건이 충족되지 못해 우리와 연변예술대학간의 실연 교류회는 당장 이루어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2000년도에 <한국전통음악학회>가 조직되고, 학회장에 취임하면서 나는 첫 대외행사로 <-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올해까지 19회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 측이나 연변예술대학 측 모두가 이러한 만남을 통해 민족음악의 뿌리는 하나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더욱 우리의 민족음악을 함께 지켜가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