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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토끼에겐 토끼를 잡아먹는 여우가 있어야 한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0 <천적은 필요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여우에게 잡아먹히는 토끼 입장에서는 여우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전체로 보면 먹고 먹히는 관계는 필요하다. 천적은 꼭 필요한 존재로서 만일 천적이 없다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된다. 대부분의 생물종은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 때문에 만일 어떤 식으로든지 억제되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한 쌍의 파리는 15일 동안 자라서 약 200개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다. 만일 새끼가 모두 살아남고 다시 번식을 계속한다면 7개월 만에 지구 크기의 파리 떼가 될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가 새나 곤충에 먹히지 않고 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면, 이듬해 봄에 들판은 온통 민들레로 뒤덮일 것이다. 바다에 사는 거북이는 뭍으로 올라와 모래 속에 알을 낳는데, 부화된 새끼 거북이 중에서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서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비율은 1퍼센트 미만이라고 한다.

 

한 생물종의 번식을 억제하는 요인으로는 천적, 식량 부족, 질병 등이 있는데, 이러한 억제 요인을 환경 저항이라고 한다. 환경 저항은 어느 한 종의 급격한 번식을 막고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에 매우 필요한 요소이다. 그 중에서도 천적의 존재는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필요하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카이바브 고원에는 사슴이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1906년에 사슴을 인위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수렵 금지 구역을 지정하고 포식자인 살쾡이, 이리 등의 사냥을 권장한 결과 사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풀이 부족해졌으나 포식자가 줄어 사슴은 계속 늘어났다. 1925년에 고원의 사슴 수는 10만 마리로 증가하고 결국 먹이가 부족하게 되어 두 해의 겨울 동안에 사슴의 60퍼센트가 굶어죽었다. 자연 상태로 두었더라면 평형을 유지했을 터인데 인간이 개입하여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처럼 천적이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된다는 이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생태학자만이 알고 있는 원리가 아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에는 전북 부안 근처에서 만난 미꾸라지 양식장 아저씨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본시 미꾸리 천적은 메기인디, 양식장에 메기가 있어야 미꾸리가 잘 된당께.”

어째서 그래요? 메기가 잡아먹으면 미꾸라지가 줄어들 것 아닌가요?”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질 않아. 메기가 없으면 미꾸리가 빈둥빈둥 놀기만 해서 살도 힘이 없구 차지질 않아. 메기가 있어야 놀다가도 잽싸게 진흙 속에 몸을 처박아 튼튼해지고 잘 자라는 뱁이거들랑.”

 

이상의 짧은 대화에서 미술사가인 유홍준은 생태계에서는 천적이 필요하다는 원리를 순식간에 깨닫는다. 그리고 이어서 개인의 삶에도 긴장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는 잡지에 답사기를 쓰면서 마감일이 있으니까 썼지 놀면서 원고를 미리 써 둔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한다.

 

강원도 산악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솔잎혹파리는 몸 길이가 2.2밀리미터 이하인 작은 파리 모양의 산림해충인데 1929년 전남 목포와 서울의 비원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솔잎혹파리의 유충은 솔잎 밑에 벌레혹을 만들고 그 속에서 수액을 빨아먹으므로 잎의 생장이 중지되고 변색되어 떨어진다. 잎의 피해가 반복되면 나무가 죽기도 하는데, 특히 적송(껍질이 붉은 소나무)과 해송(바닷가 소나무로 껍질이 검다)이 취약하다.

 

처음에는 솔잎혹파리를 구제하기 위하여 농약을 공중 살포하기도 하고 수간주사라고 하여 나무 줄기에 농약을 주사하기도 하였으나 솔잎혹파리는 여전히 늘어났다. 산림청에서는 결국 천적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솔잎혹파리의 유충 몸속에 알을 낳는 2종류의 기생벌을 인공으로 길러 산림에 이식하여 성과를 보았다고 한다.

 

질병은 병균과 면역체계와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면역력이 강하면 병균이 침입해도 우리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보거나 또는 스스로 병에 걸려 고생할 때에는 , 병이 없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병이 없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우선 병이 없다면 사람들은 매일 과로를 일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과로를 하면 몸이 아프거나 몸살이 나는 것은 더 이상 과로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보라고 보아야 한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도 위장의 안전을 위해서 경보를 보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질병은 샘명체를 괴롭힌다기보다는 생물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데 공헌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병균에 의한 질병은 비유하자면 자동차의 과속을 막는 제동 장치 같은 기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사람들은 으레 과속을 하고 오히려 더 많은 사고가 날 것이다. 그러므로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듯 모든 생물종이 마주치는 질병은 천적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즐겨 읽는 보왕삼매론의 두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어려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생태계에서 천적(여기서는 어려움)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태계의 원리를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보왕삼매론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기며, 또한 생활이 사치해진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문명을 연구한 결과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표현했다. 외부로부터 도전이 왔을 때에 적절히 응전하는 과정에서 문명이 번영하며, 도전이 없으면 문명은 정체되고 결국은 멸망한다는 것이다. 결국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문명에도 역시 어려움이 필요하며, 생태계의 용어로 말하면 천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나도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 가서 젊다는 소리를 못하겠고, 내가 인사하는 사람보다도 내가 인사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느 모임이든지 가면 어르신 소리를 듣는다. 길을 걷다가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예쁜 여인을 보면 생각만 즐겁지 도무지 느낌이 없다. 자꾸 편한 것을 찾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별 어려움이 없다 보니 애써서 추구할 목표도 뚜렷하지 않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노인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스스로 어려움을 만들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헤엄치지 않는 물고기가 물살에 쓸려가듯이 그냥 세파에 떠밀려 힘없이 밀려갈 것이다.

 

법정 스님 이야기를 류시화 시인 엮은 책 산에는 꽃이 피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한여름에 법정 스님을 만나러 불일암에 찾아갔다. 산으로 난 오솔길을 오르는데 날은 덥고 주위에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그래서 이런 날은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이나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불일암에 도착하니 스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낮잠을 주무시는 게 아닌가 하여 오두막 가까이 가서 스님을 부르자, 먼 뒤쪽에서 걸어 나오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님, 이 무더운 날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졸음에 빠지지 않으려고 칼로 대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칼도 날카롭고 대나무도 날카로우니 깜박 졸았다간 위험하다. 한여름에, 그것도 혼자 지내는 거처이니 낮잠을 즐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졸지 않고 활짝 깨어 있기 위해 칼로 뾰족한 대나무를 깎고 계셨단다. 법정 스님은 생태계의 원리를 터득하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