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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모리 쓰가루 지방의 보온성 옷 ‘코긴사시’

[맛있는 일본이야기 415]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막부시대(여기서는 에도시대‘1603~1868’를 말함)에는 막부의 엄격한 규제로 아무나 목화솜으로 옷을 해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인 아오모리 사람들은 마를 심어 그것으로 옷을 해 입어야 했지요.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겨울에 숭숭 바람이 들어오는 마옷을 입을 수 없게 되자 어머니들은 마옷감 위에 코긴사시(자수의 일종으로 보온을 위한 덧누비)를 해서 보온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막부에서 목화솜은 사용못하게 했지만 목화실은 허용하여 집집마다 코긴사시 붐이 일었지요. 그렇게 가족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긴 코긴사시는 쓰가루지방의 독특한 무늬로 남아 오늘날 쓰가루코긴사시의 전통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青森県 弘前市)에 사는 코긴사시의 명인 사토요우코 (佐藤陽子) 씨가 그의 자수전시관을 찾았을 때 들려준 이야기다. 전시관의 정식 이름은 <사토요우코코긴전시관(佐藤陽子こぎん展示館)>으로 이곳을 찾아간 날은 지난 88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히로사키시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자수전시관은 2층짜리로 된 아담한 가정집 같은 곳이었는데 1층에는 견학자들을 위한 공간이고 2층에는 오래된 코긴자수 옷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메이지시대(1868~1912)만 해도 여자들이 시집갈 때 까지 코긴사시 20(이것으로 옷을 만듬) 정도 해가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솜씨가 좋은 처녀들은 좋은 혼처에서 서로 며느리를 삼으려고 했지요. 지금과 달리 손으로 옷감을 짜서 옷을 해 입어야하는 시대였으므로 바느질이나 자수 솜씨는 여자들이 익혀야할 필수 항목이었습니다사토 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코긴사시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문헌은 1695년 쓰가루번(津軽藩)번정일기(藩政日記에서 비롯된다. 그 뒤 1788오민즈이(奧民圖彙)에는 누비옷(코긴사시)은 면실로 다양하게 누비는 것을 말하며 남녀모두 입고 대부분은 감색천에 흰 실로 누빈다라는 기록이 있어 누비옷(코긴사시)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막부의 엄격한 금지를 당하던 목면섬유 사용은 대정시대(大正時代, 1912~1925)에 들어 허용이 되자 코긴사시는 보온성 보다는 멋스러운 디자인 쪽으로 발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네도 한산모시가 사라지고 전통 옷감으로 남은 것처럼 아오모리 쓰가루의 코긴사시도 그러한 길을 걷게 된다.



이 소녀가 짚고 있는 지팡이를 잘 보세요. 예전에 쓰가루 지역의 소녀들은 어린시절부터

깊은 산에서 숯을 등에 짊어지고 마을로 져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먹고살 것이 없던 시절, 남자들은 숯을 굽고 여자들은 소녀들까지 나서서 숯을 등짐으로 져 날라야했지요. 무거운 숯을 지고 산비탈 길을 내려오다 잠깐 쉬려고 등짐을 등에서 내려놓다가 다시 짊어질 때 그만 고꾸라져서 계곡 밑으로 굴러 떨어져 죽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소녀들은 지팡이에 엉덩이를 기대고 서서 잠시 휴식을 취했지요. 등으로 숯을 져 나르다보니 특히 어깨부분이 빨리 닳아버립니다. 그래서 어깨부분만 다시 몇 번이고 덫 대어 입곤했지요.”

 

코긴사시(누비옷)는 쓰가루 사람들에게는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옷이었지만 지금은 쓰가루의 전통 옷으로 대접받아 그 시절 옷을 구경하기 위해 불원천리 먼 곳에서도 일부러 이 자수전시관을 찾고 있다니 세월이 빚은 의생활 변천을 실감해 본다.

 

춥고 겨울이 긴 산간지방에서 가족들의 보온성 옷을 만들기 위해 호롱불 아래서 한올 한올 실을 덧대어 코긴사시(누비옷)를 만들던 일본의 여성들, 그들이 만들어 입던 옷은 오늘날 쓰가루 지방의 귀한 민속자료로 대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