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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풋내기 사랑 / 최홍련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9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누가 세수시켜 놓았는지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높고 푸르다. 주는 대로 꼬박꼬박 먹다보니 어느새 벌써 반백 나이가 되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찾지 못했던 추억속의 모교를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연길시조양천1중이라는 간판을 보노라니 어느새 학교 때 추억이 해변가 파도처럼 철썩이며 밀려온다.

 

그게 몇 학년 때 일이였지? 아마도 고중1학년 후학기 문과반에 다닐 때 일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싣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희미해지지만 사춘기 때 짝사랑을 했던 일은 아직도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때 향화라는 녀자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맨날 하학종이 울리면 손에 손을 잡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백양나무사이를 누비였다. 소곤소곤 밀담을 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남자애는 누구냐? 내가 좋아하는 남자스타일은 누구다. 그러면서 쏙닥쏙닥이 끝이 없었다.

 

내가 반했던 남자애는 초중 때 못 보던 애였다. 고중에 올라가면서 다른 지방에서 우리 학교에 입학해 온 것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쭉 빠진 롱다리, 우리 반뿐만 아니라 전교 녀자애들 환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왜 검실검실한 얼굴에는 항상 수심이 비껴있었는지. 진짜 웃는 얼굴을 별로 못 봤던 것 같다. 뭔가 우수가 넘치던 남자애. 그래서 내가 보호해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 같다.

 

그 애가 왜 내 마음을 온통 휘저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나는 온통 그 애 일거일동만 탐조등을 켜고 체크했다. 그나마 수학이랑 몇 과목은 빼놓지 않고 공부한 덕에 성적은 항상 앞자리 차지했었지만.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그 애가 오지 않았다. 감기몸살인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애타는 마음이지만 그 애 학교숙소를 찾아갈 수도 없고 혼자서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그리고 끝내 참지 못하고 글쪽지를 써서 그 애 책상에 넣어줬다. 그냥 힘내라고 쓴 내용이었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런 말은 비치지도 못할 때였으니깐. 하루하루 며칠이 지나도 오매불망 기다리던 쪽지는 안 오고 통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 남자애가 나를 불렀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근데 한두 마디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미 녀자친구 있다고 고백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가슴이 쿵 무너지던 소리는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아마 그때는 그게 동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괜히 떠나간 뻐스를 기다린 격이 되여 버렸다. 연애라는 거 한번도 못해본 내가 처음으로 소중하게 남몰래 키워온 풋사랑이 암초에 부딛친 거다. 어설픈 첫사랑에 나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후 한두 달 열심히 공부한 덕에 고급중학교에 붙어 모교를 떠나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내 풋내기사랑은 싹이 트기도 전에 요절나버린 것이다. 오늘 문득 후배들의 초대를 받고 내가 다닌 중학교를 찾아보노라니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추억 한 웅큼 자기를 보아달라고 빠금히 그 모습을 내민 것이다. 불타던 청춘, 겁 없이 희망으로 불타던 나는 그 후 고중을 다니면서도 그 아린 상처로 다른 사랑을 꿈꾸지 못하고 오직 공부에만 매진했다.

 

대학교 시험을 친 첫해에 바로 내가 원하던 경찰학교에 붙었고 내 인생은 바야흐로 세찬 파도에 실려 지금 이 부두가에까지 떠밀려왔다. 듣자니 그 남자애는 학교 때 연애하던 녀자애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단다. 여태껏 나는 한 번도 그 짝사랑 남자애를 본적 없지만 그냥 추억만으로도 내 청춘의 한 페이지는 그토록 아름답다.

 

그때의 추억은 티 없이 깨끗한 나의 향기였지, 그 향기는 이젠 세월의 파도에 다 씻겨갔지만 나의 순결, 그 순수로 나는 지금껏 나를 다시 수행하는, 수련하는 채찍이기에 그 추억이 더없이 소중하다.

 

참고 : 중국 학제

소학교 : 한국의 초등학교로 6

초중(초급 중학교) : 한국의 중등학교로 4

고중(고급 중학교) : 한국의 고등학교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