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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조선 전기에 한글로 쓴 비문 <이윤탁 한글영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0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가면 소유주가 성주이씨문경공파정자공문중인 보물 제1524서울 이윤탁(李允濯) 한글영비(靈碑)”가 있습니다. 이 비석은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이 아버지 이윤탁(李允濯)의 무덤을 어머니 고령(高靈) 신씨(申氏)의 무덤과 합장하면서 1536년에 무덤 앞에 세운 묘비입니다. 이 묘비에는 앞면과 뒷면에 각각 무덤 주인의 이름과 그 일대기가 새겨져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도 한글과 한문으로 경계문(후손에 경계하는 글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비석의 특징은 왼쪽 면에 새겨진 비문인데 우리나라 비문 가운데 한글로 쓰인 최초의 것입니다. 그 가치를 보면 먼저 중종 31(1536) 당시 한글이 얼마나 널리 쓰였는가를 증명해주는 자료지요. 그 뿐만 아니라 이 비석의 글은 비석의 이름인 영비(靈碑)’를 빼면 국한 혼용이 아닌 순 한글로만 쓰여 있으며, 한문으로 쓴 뒤 뒤친 언해문이 아니라 원래 한글로 쓴 것입니다. 따라서 한글이 한문 번역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직접 전달하는 도구로 바뀌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했지만 조선시대에 한글로 비석을 새기는 일은 매우 드물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한글 비석 3점 가운데 조선 후기에 세운 다른 비석과 달리 이 한글 영비는 조선 전기에 세워졌다는데도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한글 영비는 한글로 쓴 최초의 비문이라는 의미 말고도 세운 때가 확실하고 세운 내력이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