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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윤동주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터에서 노래부르기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대표 마나기 미키코 씨를 만나다

[신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지난 121() 오후 3, 마나기 미키코(馬男木美喜子, 53)씨와 나는 윤동주 시인이 죽어간 후쿠오카 형무소(현 구치소) 건물 뒤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 노래를 불렀다. 번안곡인 이 노래는 윤동주 시인이 평소 즐겨 불렀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27살 조선 청년 윤동주, 유학지였던 일본에서 금지된 언어인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와 이곳 후쿠오카 형무소 안에서 정다운 고향을 그리며 죽어가야 했던 쓰라린 마음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마나기 미키코 씨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눈가가 촉촉해보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오랫동안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의 대표를 맡아온 사람이다.

   

 


원래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는 이쪽에 보이는 사와라구청(早良區役所)과 버스터미널 자리부터 시작해서 12헥타르에 해당하는 넓이였습니다만 지금은 거의 다 헐려버렸습니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나를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던 곳으로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인 후지사키역(藤崎驛)출구로 나오니 그곳이 곧바로 옛 형무소 자리였다.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후쿠오카 형무소는 1913, 하카다만(博多湾) 가까운 곳에 12헥타르(36,000) 넓이로 세워졌다. 당시 사진을 보면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하늘에서 찍은 형무소 시설은 사각형의 높은 담장 속에 마름모꼴로 긴 지붕이 이어져 있었는데 한 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 것 같아 보였다.

 

 

형무소 자리였던 곳을 한 바퀴 돌아보시지요.” 유창한 한국말로 마나기 미키코 씨는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현재 사와라구청과 버스터미널로 바뀌어버린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였다.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자 그리 크지 않은 가나구즈강(金屑川)이 나타났다. 겨울철이라 물이 거의 바닥을 들어낸 곳에는 왜가리들만 간간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가나구즈강을 사이에 두고 강 이쪽편이 옛 형무소 자리였는데 강 하류는 하카다만(博多湾)과 이어지고 있었다. 강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마나기 미키코 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형무소 같아 보이는 건물(, 구치소) 뒤편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곳은 맞은편 아파트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모치니시공원(百道西公園)으로 형무소 담장을 끼고 직사각형으로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바로 여기서 우리들이 해마다 윤동주 추모회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한국의 성신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윤동주 시인 추모 행사를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물론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노래도 불렀지요.”

 

해마다 이곳에서는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윤동주의 순국일인 217일을 전후로 그의 시를 읽으며 27살로 생을 마감한 조선 청년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을 갖고 있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추모 행사를 하는 지점에 서서 윤동주의 자화상을 낭송해주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뒷줄임)”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이란 대목에서 나는 몇 해 전 찾았던 북간도 용정의 너른 뜰을 떠 올렸다. 방학이면 선바위 모퉁이를 돌아 그리운 고향집으로 달려갔던 시인, 사랑하던 누이동생 혜원이와 꿈에도 그리던 부모님, 고향 친구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까?

 

마나기 미키코 씨는 찬바람이 부는 쓸쓸한 공원 안, 추모회를 하던 장소에서 나를 위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낭송해 주었다. 순간 어디선가 윤동주 시인이 우리를 향해 손뼉을 치는 듯한 환상이 느껴졌다.

 

 

자화상낭송을 마치고 다시 형무소의 시작점까지 함께 걸었다. 36,000평에 달하는 형무소 터를 다 돌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바람이 제법 찼다. 우리는 사와라구청 안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추운 몸을 녹이며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20여 년간 윤동주 시인을 연구하고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마나기 미키코 씨의 삶은 시인의 주옥같은 시어처럼 이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윤동주의 고뇌하는 모습에서 큰 울림 받아

[대담]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대표 마나기 미키코 씨

 

 

-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언제 인가요?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인연인 것 같아요. 저는 윤동주 시인이 유학 온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하고 한국의 연세대학교에 유학을 했는데, 윤동주 시인은 저와는 반대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을 왔으니 말이에요. 저는 연세대학 유학시절에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만났습니다. 보통 일본의 시들이 난해한 게 많아 별로 시를 즐겨 읽지 않았으나 윤동주의 시는 달랐습니다. 이해가 쉬울뿐더러 읽을수록 순수하면서도 숭고한 감정을 어딘가 모르게 느꼈으니까요. 윤동주 시를 읽으면서부터 시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을 소개한다면?

 

이 모임은 19952, 후쿠오카시에서 열린 윤동주 50주기를 추모하는 한일 합동위령제를 계기로 탄생했습니다. 물론 니시오카 겐지 교수님이 94년 12월부터 물밑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때 위령제라는 1회성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윤동주의 시와 죽음을 정중하게 돌아보고 일본과 한국의 새로운 관계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시를 읽는 모임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제가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은 1997년도니까 올해로 21년째가 되네요.

 

사실 연세대학교에 유학시절 윤동주 시도 많이 읽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도 꽤 컸는데 귀국 후에 직장일로 바빠서 관심을 이어 가진 못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다니는 부서로 전근 온 지인이 윤동주 시 읽기 모임에 나가는 분인데 저에게 윤동주 시인을 아느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희는 한 달에 한번 모여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전 시집가운데 1편씩을 골라 그 시에 담겨 있는 시인의 메시지에 대한 의견을 나눕니다.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자가 고른 시 1편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낭송 작품에 대한 소감이나 자기 나름의 해석을 발표 한국어 원시를 다시 살피고, 사진판 자필 원고집에서 퇴고 과정을 보면서 토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날 읽은 작품을 다시 되새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윤동주의 시 세계가 점점 확장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왜 이러한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가 살던 시대는 어떠한 시대였는지, 한일관계의 아픈 역사는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시인이 살다간 시대를 재인식하게 되기도 하지요. 시 모임을 통해 귀중한 배움과 나눔의 장을 펼치는 일은 매우 보람 있는 일입니다.“


 

- 마나기 미키코 씨에게 있어서 윤동주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요?

 

윤동주 시인의 시를 통해 시 읽는 즐거움을 터득했으니 이 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는 윤동주 시인을 통해 역사, 예술, 인생관, 한일관계, 평화, 삶의 철학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점입니다. 시인 윤동주의 갈등하는 모습, 자기 삶에 고뇌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큰 위안을 받습니다. 또한 삶의 고뇌를 바깥에서 찾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하는 모습에 큰 울림도 느꼈구요. 이러한 좋은 시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지금까지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을 이끌어왔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이어진 것을 보면 그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마법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이 올해 펼치는 일은?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의 마음에 닿다(尹東柱にふれる)라는 주제로 후쿠오카에서 큰 행사를 엽니다. 1217(), 윤동주탄생100주년기념사업실행위원회, 큐슈대학윤동주연구회, 주 후쿠오카대한민국총영사관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타고기치로 작가의 생명의 시인 윤동주특강과 2부에서 윤동주 영화 상영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윤동주 시인이 추구했던 시 세계와 조국에 대한 애끓는 갈망이 무엇이었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일본어 한자가 지원되지 않아 한자 표기를 구자체로 표기했음을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