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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성과 변청의 다양함, 유대봉제 백인영류 산조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벽파 경창대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검토사항들을 지적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회당일 개회선언과 함께 벽파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가하는 점은 반드시 알리고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 실제 경연에 있어서 명창부는 지정곡을 부여하고 당일 경연자가 직접 부를 곡을 추첨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검토 할 것과, 좌창분야와 입창은 별도 경연 후에, 결선에서 대상을 선정할 것, 그리고 대상 경연시에는 민요로 통일하는 문제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축하 무대는 선생을 기리는 큰 축제의 잔치판으로 기획하고 시상식에는 국악계나 문화예술계 인사들, 특히 선생의 고향인 성동구청이나 의회, 문화원 등 관련 인사들이 참여해서 선생의 유업을 확인하고 받들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 등도 이야기 하였다.

 

벽파 추모사업 추진위원회 이상만 위원장은 선생은 인사말을 통해 벽파선생은 방송을 통해서 경기소리를 보급하는데 열성을 다했고, 1958년 공보실(지금의 문광부)에서 30분짜리 테잎 138개 분을 녹음하여 <국악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는데, 벽파가 아니었다면 경기산타령은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였으며, 투병 말년까지도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기소리의 사설집을 정리하는 등, 선생이 아니었던들 오늘의 경기민요 전승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벽파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유업을 제자들과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백인영 5주기 추모 음악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지난 121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가야금과 아쟁의 백인영 명인을 위한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는 <유대봉제 백인영류 보존회>를 꾸리고 있는 제자들이 중심되어 빗소리도 임의 소리라는 표제로 열렸는데, 평소 백인영의 음악을 좋아했던 애호가들이 몰려들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백 선생의 추모 음악회를 꾸준히 준비해 오고 있는 그 제자들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음악을 이어가는 그 정신도 대단하지만, 선생을 받드는 마음이 참되고 진실 되기에 더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사제(師弟)의 정이나, 제자들의 마음이 하나같지 않으면 이루기 어려운 일을 참으로 묵묵히 해 나가고 있어서 국악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백인영이 살아생전 제자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 하는 점을 엿보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보존회 대표 백기숙 외에 사무국장 이민영, 총무 배효영 등이 앞장서고 있으며 이성희, 신정혜, 박기연, 차혜림, 김해리, 김주리, 유가희, 최민서, 홍지원 외에 10여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5주기 음악회에는 특별 및 우정 출연으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인 신영희 명창과 판소리 고법 보유자인 김청만 명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아쟁 연주자 김영길 등이 작년에 이어 그대로 출연해 주었다.

 

이밖에도 전국고수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신규식,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이수자인 채옥선, 고법 이수자인 서은기, 춘향가 이수자인 김백송,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대금주자 원완철 등이 출연하여 무대를 더더욱 빛내 주었다. 그리고 음악회 진행은 음악학 박사 하주용이 생전의 고인과의 추억담을 소개하면서 잔잔하고 매끄럽게 안내해 주었다.

 

첫 연주곡목은 유대봉제 백인영류의 짧은 산조였다.


 

산조 음악의 생명을 즉흥성에 두고, 긴장과 이완의 감정을 적절히 대비시켜 나가는 음악이라고 볼 때, 이 유대봉제 백인영류의 산조 음악이야말로 즉흥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또한 악조(樂調)를 바꿔나가는 변조(變調)의 현상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닌 음악이라 하겠다. 또한 남도 소리의 한()을 그대로 산조음악 속에 옮겨 놓은 가운데, 경드름의 깔끔한 분위기도 들어내고 있어서 남도맛과 경기조의 멋진 조화와 기교가 요구되는 음악이기도 한 것이다.

 

이 산조는 백인영 명인의 가락을 잇고자 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담아서 백기숙 외 20여명이 연주하였는데, 제주임에도 그 동안 연습과정의 충실함을 들어내듯 전체가 매끄럽게 연주해 주어 열띤 호응을 받았다.

 

산조 음악이야말로 고도의 기교와 음악성을 요하는 민속음악으로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나는 이 곡을 듣고 있으면서 백인영은 참으로 음악적 재기(才氣)를 타고 난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의 음악적 경험이 더더욱 그를 즉흥음악의 귀재로 만들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선생을 모셔다가 집에서 배울 만큼 부모님의 관심도 대단했다는 점이나 어린나이에 여성국극단에 입단해서 명인 명창들과 함께 그들의 음악인생을 배우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과정, 음악이 곧 생활이라는 철학을 지니고 살아왔던 그 였기에 가능했던 즉흥 음악의 표출은 그만의 특기였던 것이다.

 

그는 어떤 음악이든지 한번만 들으면 그대로 재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나 열정이 대단했던 연주자였기에 많은 제자들이 그 앞에 몰려들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두 번째 연주곡목은 백인영제 가야금 병창의 <쑥대머리>였다. 이 곡은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손질하지 않은 머리 모양을 형용한 말인데, 옥중가(獄中歌), 또는 옥중비가(獄中悲歌)라고 하는 대목의 시작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임방울 명창이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 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손가락 피를 내어로 불러 더욱 유명해 진 대목이다.

 

그러나 이 대목이 그 이전의 김세종제에서는 옥방이 험탄 말을 말로만 들었더니 험궂고 무서워라, 비단보료 어데두고, 헌 공석이 웬일이며 원앙금침 어데 두고 짚토매가 웬 일인고, 천지야 삼겨, 사람 나고 사람 삼 글자 낼 제, 뜻 정()자 이별 별()자 어찌 허여 내셨던고?”로 불렀다.

 

여하튼 생전의 백명인은 이 대목을 매우 좋아해서 스스로 부르기도 했거니와 가야금 병창곡으로 만들어 놓았다. 공식적인 무대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날은 신정혜, 차혜림, 김주리 등이 서은기의 장단에 맞추어 처음으로 무대에서 공개했다. 판소리의 탄탄한 소리 공력도 매끄러웠지만, 중간 중간에 가야금의 반주가락이 돋보여 이채롭게 들려 왔다. 가야금 가락이 판소리의 뻗는 소리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서로의 조화를 이루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