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은산별신제 ‘꽃받이’에 담긴 신앙적 의미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11) - 은산별신제 5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은산별신제에 차려지는 모든 꽃들은 원칙적으로 종이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근래에 천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만드는 것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종이로 손수 만든 지화이다. 의례에서 종이로 만든 꽃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종이꽃은 신앙 대상과의 연관 속에서 쓰인다. 그러므로 이를 무교에서는 신령님꽃, 불교에서는 부처님꽃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신앙용으로 꽃이 대상신을 모시는 제단에 오를 수 있으려면 제작된 꽃이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테면, 꽃 위에 나비를 앉힌다던지, 꽃송이를 정해진 수에 맞춘다던지, 꽃의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례에서 필요로 하는 꽃은 대체적으로 상징성을 동반하고 있는 신앙적인 꽃이기 때문에 생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이를 테면, 수팔연은 식물세계에서는 재배되지 않으며 오로지 가화를 통해서만 존재성을 갖고 있다.

 

셋째, 지화는 신앙 대상 및 의례형식에 맞도록 필요한 물감으로 채색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오로지 제작되어진 꽃이어야 가능하다. 넷째, 지화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사용되는 의례용이어서 언제 어디서나 필요에 따라 사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지화는 생명력이 짧은 생화에 비해 오래시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의례가 짧게는 3일 길게는 보름까지 이어지는 큰 규모로 진행될 때는 시들지 않고 지속성이 유지되는 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신앙용 신화는 의례 마무리와 함께 불태운다. 이를 테면, 굿에서의 지화는 뒷전거리가 끝나면 불사르는 게 되는데 이는 굿판에 모셔 들었던 모든 신령들을 제자리로 다시 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물리치고자 함이다.


 

은산 별신제에서는 미리 지화를 만들어 두었다가 의례를 통해 속()의 지화(紙花)에서 성()의 신화(神花)로 전환을 도모한다(양종승, ‘궁중상화, 무교신화, 불교지화 연구1회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학술세미나한국불교역사 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2013; 양종승, ‘신화(神花)와 불화(佛花)의 종교신앙적 형태와 의미불교지 화장엄의 재조명 학술세미나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2017). 이 과정을 꽂받이라고 한다.

 

곧 의례에 필요한 지화를 받아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부여 고란사와 청양 정혜사에 화등방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꽃을 만들었다. 이로써 은산 별신제의 종이꽃 제작이 신성한 공간에서 엄숙하게 이루어졌다는 것과 이 꽃이 불교 영양 하에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불교 의례에 사용되는 지화장엄이 은산별신제에 쓰이는 꽃에 영향을 끼쳐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꽃에 있어서도 무불습합은 일찍이 이루어 졌는데 이러한 것은 은산의 경우만이 아니다. 동해안 굿 종이꽃 중에는 18종의 불교 계통 꽃이 있는 것만 보더라도 양자 관계성을 알 수 있다.

 

어찌 되었건, 별신제에 사용할 꽃을 받아 오는 것은 곧 신성함을 부여 받아 온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황해도 만구대탁굿에서 화공이 만든 신화를 만신이 사게 되는 이른바 꽃타는 거리(또는 꽃 파는 거리)’와 같은 것이다. 화공이 제작한 꽃들은 굿청 옆에 마련된 꽃방에 모아 둔다. 굿이 드는 첫날 행해지는 칠성거리 끄트머리에서 꽃 타기가 이루어진다. 화공과 경관만신 사이에 펼쳐지는 꽃 대사 및 재담에는 꽃 유래를 비롯한 꽃에 대한 형태, 의미, 역할 등 전반적 내용이 포함된다. 이때 만신은 꽃을 타기 위해 꽃에 대한 내력을 샅샅이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꽃 내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환쟁이는 꽃을 내 놓지 않는다. 이러한 꽃 줄거리는 황해도 굿의 주요한 굿 문서들이다. 예컨대, 만신이 일월꽃을 달라 하면 화공은 일월꽃이 어떤 꽃인지 묻고 경관만신은 일월꽃이 천지일월 만물이 생긴 이 후 주야를 가려온 천하를 밝히기 위한 꽃이라고 답해야 하는 것이다. 드디어 올바른 답을 들은 화공이 꽃을 내주면 만신은 꽃 앞에 절을 올리고 양손으로 받아 모셔 굿청에 진설하게 되는 것이다.

 

꽃 타는 굿은 서울굿에서도 행해졌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굿에서도 주당물림을 하고 난 후 부정청배를 하기 전, 전안에 꽃을 진설하기 위해 화공으로부터 꽃을 사와야 했던 것이다(서울굿 명인 박종복 담, 1979). 이러한 꽃 타는 의례는 화공이 제작한 꽃들을 꽃방으로부터 무당이 주관하는 굿청으로의 이동을 통해 성스러운 신령의 꽃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황해도굿이나 서울굿에서와 같이, 은산 별신제의 꽃받기 역시 화공으로부터 받아든 꽃이 성스러운 신령의 꽃으로 거듭나기 위한 의례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꽃받기 진행은 꽃이 부정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단히 엄숙하게 이루어진다. 받아 온 꽃과 화등은 화주 집에 두었다가 제단에 제물을 차릴 때 맨 먼저 올리게 된다.

 

은산 별신제의 꽃은 꽃병 6개와 함께 신령이 오는 길을 밝히는 6개의 화등(花燈)으로 구성된다. 꽃받기가 완료되면 신령의 꽃으로 재탄생되어져 신물(神物)로써의 영험력을 갖는다. 그리하여 신령이 강림하는 통로가 되고 또한 신령의 강림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꽃 그 자체가 신령 강림을 뜻하는 것이요, 신령이 머물러 있음을 뜻하는 영물(靈物)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지화는 애초부터 아름다운 모양새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단순한 미학적 관점의 조화(造花)가 아니라 신령 세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종교신앙적인 꽃으로 제작되어 진다. 그래서 은산 별신제의 종이꽃은 그 자체가 신이 인간 세상으로 하강하는 통로가 되며 동시에 신이 인간 세상에 강림하여 가장 먼저 안착되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꽃으로 강림한 신령은 꽃 위에서 노닐다가 다시 원래의 곳으로 떠나 간다. 이러한 의례과정을 보면, 신화는 결국 청신(請神), 봉신(奉神), 오신(娛神), 송신(送神)의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