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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조선시대 농사짓는 백성들 귤나무 붙들고 울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91]

[신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등산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산꾼들이 배낭에서 먹을 것을 하나, 둘 꺼내지 않겠습니까? 제일 먼저 꺼내드는 것이 물일 것이고, 이것저것 간식으로 먹을 것도 많이 꺼내듭니다. 그 중 많이 꺼내드는 것 중의 하나가 귤입니다. 지난 토요일 대학동기들과 같이 2018년 새해 첫 산행을 하면서도 어김없이 한 친구가 귤을 꺼내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줍니다. 저도 친구가 주는 귤을 먹으면서, 문득 지금은 이렇게 흔하게 귤을 먹고 있지만, 이 귤이 조선 시대에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에서만 귤이 재배되고, 또 그 귤이 거친 바다를 넘어 육지로 들어오는 것이므로 일반 백성들은 감히 먹을 생각도 못했지요. 아니 백성만이 아닙니다. 육지로 건너온 귤은 곧바로 궁궐로 진상되는 것이므로 양반들도 먹기 어려운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다만 임금이 신하들에게 귤을 나눠주면 성은이 감읍하오이다하면서 받아먹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요즈음 여름에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얼음도 마찬가지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요즘 같은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겨울에 얼어붙은 한강에서 잘라와 서빙고에 보관한 소량의 얼음만 여름에 먹을 수 있었지요. 그렇기에 이 얼음도 우선 임금이 차지하는 것이고, 신하들은 임금이 특별히 하사하는 얼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구요.

 

귤이 이렇게 귀한 과일이니, 귤을 수확할 무렵이면 궁궐에서는 이제냐 저제냐 하며 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정약용의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해인가 음력 11월이면 도착해야 할 귤이 아직 도착이 안 됩니다. 당연히 조정에서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제주 목사에게 채근을 했겠지요. 그런데 그 해에는 감귤 꽃이 한창 피었을 무렵 태풍이 불어 닥쳐 감귤 꽃이 모두 떨어졌답니다. 그러니 채근한다고 금방 귤이 올라오겠습니까? 겨우 12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귤이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귤 수확이 예년보다 늦어지자, 당시 귤농사를 짓던 제주 농민들은 모두 귤나무를 부둥켜안고,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임금의 은택을 져버리는 일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죽을지언정 귤만은 달리게 해주십시오.”하면서 울부짖었답니다. 그 정경을 한 번 머리에 떠올려보십시오. 울부짖는 제주 농민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주 농민들이 임금의 은택을 져버리는 일이라며 울부짖었다고 하는데, 과연 제주 농민들이 임금님이 제 때에 귤을 드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울부짖었을까요? 사실 제주 농민들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주 농민들은 귤을 진상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농민들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농민들을 닦달하고 처벌했거든요.

 

비단 귤만이 아닙니다. 조선은 각 지방의 특산물은 공물로서 조정에 바치도록 하였는데, 특산물이라는 것이 귤처럼 그 해의 기후나 자연재해 등 여러 사정으로 수확량이 일정치 않을 수 있는 것인데, 관리들은 이런 사정을 아랑곳없이 애초 할당된 양을 내놓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렇기에 어느 지방에 어떤 특산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새로 공물로 지정하려고 하면, 백성들이 이를 막기 위해 그 특산물을 베어버리거나 말라 죽이는 등의 일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귀한 특산물을 그렇게 없애버리다니, 그저 어처구니없는 헛웃음만 나옵니다.

 

퇴짜 놓는다는 말 아시지요? 퇴짜 놓는다는 말도 공물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공물을 납품하기 위해 관아에 갖고 오면 관리가 심사를 합니다. 이 때 기준에 들지 않는 공물에는 관리가 (退)’라는 글자를 씁니다. 이렇게 되면 그 백성은 막막해집니다. 돌아가 기준에 맞는 그만한 양의 공물을 다시 가져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거든요.

 

퇴짜 놓는다는 말이 여기서 생긴 것입니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공물 장사치들입니다. 당장 자기에게 할당된 공물량을 채울 수 없는 백성들은 이런 장사치들에게 공물을 사서 관리에게 납부합니다.

 

처음에는 곤란에 처한 백성을 돕기 위해 이런 장사치가 대기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부패한 관리가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말도 안 되는 퇴짜를 놓습니다. 그러면 그 백성은 할 수 없이 공물 장사치를 찾겠지요. 그런데 이 장사치는 시가의 몇 배나 되는 가격을 부릅니다. 어쩌겠습니까? 당장 공물을 납부하지 않으면 곤장을 맞는 등 처벌을 받게 되는데... 그러니 백성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공물을 삽니다. 폭리를 취한 장사치는 이 폭리를 혼자 먹습니까? 아닙니다. 퇴짜 놓은 관리와 나눠 먹습니다. 그러니까 애초 둘이 짜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입니다.

 

백성들이 조정에 납부해야 할 것에는 공물 말고 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농업국가이니까 세금으로 곡식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는데, 군 복무대신 포()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군포(軍布)라고 하지요. 그리고 세금은 아니지만 춘궁기를 넘겨야 하는 가난한 농민에게 곡식을 꿔주고 추수 때 이자를 붙여 곡식을 받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합쳐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이라고 하여 삼정(三政)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공물에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처럼 전정에서는 백지징세(白地徵稅, 빈 땅에 세금을 물림), 은결(隱結, 양반들은 토지를 숨겨 탈세를 함), 군정에서는 황구첨정(黃口簽丁, 아이를 어른으로 둔갑시켜 징수), 백골징포(白骨徵布, 죽은 사람에게 징수)라고 하여 고혈을 빨아먹습니다.

 

그리고 환곡에서는 저리(低利)로 가난한 농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고율의 이자를 받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빌려주는 곡식에 돌이 잔뜩 들은 곡식을 대여하는 등 백성의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를 삼정의 문란이라고 하는데, 조선 후기에 오면 공물의 폐단이나 삼정의 문란으로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의 민란이 발생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홍경래의 난이고 동학혁명이지요.

 

결국 조선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양반들이 당파싸움을 하고, 한편으로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고 쇄국정책을 펴며, 안으로는 이렇게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다가 망한 것이지요. 이거 등산하면서 귤 하나 얻어먹다가 일어난 상념(想念)이 여기까지 발전했네요. 오늘날에도 조선과 같지는 않겠지만 최근까지 부패한 정권이 국정농단을 하였고, 그러다가 촛불혁명으로 탄핵을 당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아무쪼록 새 정권은 이러한 과거를 거울삼아 백성을 진정으로 섬기고,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