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이는 3ㆍ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도쿄 2ㆍ8독립선언서의 일부분입니다. 조선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을 당당한 9년 뒤 도쿄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청년들은 조국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1919년 2월 8일 도쿄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했습니다.
이날 독립선언식에는 도쿄 유학생 거의 전부를 망라한 600여 명이 참가했으며 회장 백남규가 개회를 선언한 다음 최팔용의 사회로 역사적인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선언식’을 거행했습니다. 독립선언문 낭독은 백관수가 맡았으며, 김도연이 결의문을 낭독하자 장내는 독립만세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나라밖으로 파견된 사람을 뺀 실행위원 모두를 포함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요. 이날의 함성은 이내 조선에 전해졌고 도쿄의 2ㆍ8독립선언은 이후 3ㆍ1만세운동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3ㆍ1운동 전후에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모두 셋인데 첫째는 1918년 11월 만주 노령에서 발표한 〈무오독립선언서〉, 둘째는 〈2ㆍ8독립선언서〉, 셋째는 〈3ㆍ1독립선언서〉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2ㆍ8독립선언은 3ㆍ1독립선언서보다 훨씬 강경하게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고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ㆍ8 독립선언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인 3ㆍ1독립선언을 이끌어낸 위대한 실천이며 민족 자주의 주춧돌인 것입니다. 오늘은 2ㆍ8독립선언이 있은 지 99돌, 우리는 그날의 숭고한 외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