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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실향민들을 울린 정월대보름 공연의 퉁소소리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58]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북5도 가운데 함경남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한 <퉁소 신아우>의 공연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퉁소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의 이름이고 <신아우><시나위>의 사투리로 즉흥음악을 뜻하는 음악장르란 점, 퉁소는 원래 통소(洞簫)라 쓰고 읽었으나 퉁소, 퉁수라는 이름으로 굳어졌고 문헌에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당악(唐樂)계통에 쓰이다가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다는 점을 말했다.

 

“10년 퉁수라는 말에서 이 악기의 어려움을 알 수 있고, 부는 악기를 대부분 퉁소라고 부를 정도로 널리 알려진 악기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정월 대보름 행사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오지만 고유의 노래, 음악, , 연희가 빠질 수 없다는 점, 퉁소의 고장으로 알려진 함경남도 지방에도 가무악(歌舞樂)을 중심으로 하는 마당놀이가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주에는 퉁소신아우 보존회회원들이 남산 국악당 무대에서 재현한 정월대보름 공연, 고 함경도 광천지방의 마당놀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기로 한다.

 

공연에 앞서 감회가 남다른 함경남도 염승화 도민회장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함경남도는 실향민들의 전통문화가 분단이후 지금까지 그 흐름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섭니다. 북청사자놀음과 돈돌날이, 그리고 퉁소신아우는 함경남도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인데, 실향민 1세대분들 중심으로 전승되었던 지역문화가 이제는 그분들이 모두 타계하시고 2세대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퉁소라는 악기는 함경남도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놀이악기로 집안과 마을 마당에서 흔히 연주되고 그 가락에 맞추어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마을 마당놀이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분단 반세기가 넘도록 고향땅이 아닌 남한 땅에서 전통문화가 잊혀지지 않고 전승, 보존된다는 것은 실향민들의 강인한 정신과 조상님들의 숨결이 같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잠시나마 실향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달빛 아래 함경도의 퉁소소리를 듣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대하는 퉁소소리는 이곳 사람들이 대하는 퉁소소리와는 또 다른 향수가 배어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또 이날 자리를 함께 한 한정길 함경남도 도지사도 축사를 통해 함경남도 민속절기 정월대보름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한 해 풍년을 기원하면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퉁소신아우보존회가 남북한 문화교류의 중심에 서기를 기대하며 공연의 의미를 높이 평가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월대보름이 되면 우리나라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둥근 달이 떠오르면 달을 향하여 가족, 이웃, 마을의 평안을 빌며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는 풍습이 전해오는데, 이러한 행사에는 고유의 노래, 음악, , 연희가 빠질 수 없다.

 

조선의 민속놀이가운데 박은용이 전하는 마당놀이를 참고해 보면, 함경남도 광천 일대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주민들 속에서 마당놀이가 성행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웃 도시보다도 광천이 으뜸가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가 언제부터 또한 어떠한 경로로 광천지방에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없으나 마당놀이의 중심이 되는 농악이라든가 칼춤을 보면 오랜 전통이 계승되어 온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되고 있다.


그의 글을 참고해 보면 어느 지역이나 그러하듯 광천지방의 마당놀이 역시 농민들이 주동이 되어 조직하였으며 그 놀이판에는 온 마을의 남녀노소가 다 참가하였다는 점, 이러한 놀이판을 벌이기 위해 마을의 공회당(이 지방에서는 공회 장소를 서재라고 불렀다.)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마당놀이를 위한 차비를 하면서 놀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된다는 점을 알게 한다. 서재 모임을 통해서 풍물의 재비(차비), 무동, 퉁소신아우 연주자를 결정하고 풍물 참여자를 비롯한 모든 출연자들의 의상마련이라든가 종합적으로 전반적인 행사 비용의 마련 등을 토의한다는 것이다.

 

서재모임에서 결정되고 합의된 대로 모든 사람들의 역할이 이행되기 시작 하는데, 옷감을 사기위해 장거리로 뛰는 사람도 있고, 옷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공연 연습을 하는 사람이라든가, 퉁소잽이를 부르러 가는 사람 등 등, 온 마을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명절을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기대의 중심은 마당놀이에 집중된다고 하니 마당놀이에 거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어떠했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마당의 놀이판은 당일 오후부터 개시되었다고 한다. 서재마당에서 준비를 갖춘 출연자들은 행군악으로 쇄납(날라리)의 길군악 가락을 울리면서 지정된 큰 마당을 향해 출발하며 마을의 남녀노소들은 명절 옷을 차려입고 마당 복판의 놀이판에 모여들어 둥그렇게 둘러싸고 겹겹이 모여 앉아서 함께 즐기며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월래 마당놀이란 마당에서 펼쳐지는 음악과 춤, 연희 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함경남도 광천지방의 노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마당률이라고도 부르고 또한 음률 논다라는 말로도 불렀다고 한다. '마당률'이라 함은 흔히 풍물놀이, 원율, 퉁소놀이가 일반적이다. 풀물놀이 편성은 15~30명 정도이며 꽝과리, , 장구, , 새납(다른 이름으로는 쇄납, 날라리, 호적, 태평소라고도 함)잽이, 무용수, 등이고 상모를 돌리지 않고 고깔만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새납의 역동적인 가락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춤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춤은 오늘날의 돈돌라리 춤사위와 유사하다고 한다.

 

현대와 같이 극장이나 음악회, 영화관, 또는 방송매체 등의 건전한 오락문화가 없던 시대였고, 게다가 농토도 많지 않던 산악지대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감안해 보면 1년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 있는 마당놀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한때였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남산 국악당에서 펼친 퉁소신아우 보존회의 발표회에서는 불놀이 마당-원율놀이마당-퉁소마당-사자마당, 등 네 마당으로 구분되어 연행되었다.

 

불놀이 마당에서는 풍물놀이와 지신밝기가 중심을 이루고, 둘째 마당인 원율놀이 마당에서는 고유의 춤과 토속민요가 연출되며 셋째 마당이 바로 퉁소잽이들의 즉흥적 음악놀이가 펼쳐졌는데, 구슬픈 퉁소소리에 눈시울을 적시는 실향민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사자마당으로 장식되는데, 여기에는 사자춤 이외에도 율동이나 연기, 재담이 함경도의 지방언어와 함께 그대로 펼쳐져 한바탕 축제 마당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