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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된 일본 사이타마의 ‘분재마을’

[맛있는 일본 이야기 436]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사이타마시 오오미야에는 분재(盆栽, 본사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분재마을이 있다. 오오미야에 있다고 해서 오오미야분재마을(大宮盆栽村)’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피해 이사 온 분재업자와 분재애호가들이 모여살기 시작하여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을이 생기고 5년 쯤 되어서부터 분재조합이 생기는데 이들은 분재마을 사람들이 지켜야할 4개 조항의 마을 협약을 만든다.

 

1. 이곳에 사는 사람은 분재를 10그루 이상 기를 것

2. 문호를 개방하여 언제나,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할 것

3. 이웃을 내려다보거나 그늘이 생기는 2층집을 짓지 않을 것

4. 벽돌 담장을 피하고 모든 울타리는 생울타리를 할 것

 

4개 조항의 내용은 보기만 해도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든다. 이렇게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이 마을에는 30여 곳의 분재원이 생기게 되었고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분재마을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까닭은 1940년 제2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가 분재를 사치생활로 간주하여 핍박을 가한데다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강제 징집해가기 시작하는 바람에 마을은 급속도로 피폐해져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패전(1945)후에는 땔감 부족으로 마을에 심어 놓은 분재용 나무들이 뽑혀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군이 폭격 조사단으로 오오미야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분재의 높은 예술성을 소개했다. 이 일로 오오미야의 분재마을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기 시작하여 마을은 점차 기사회생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1965년에는 이 마을에 일본분재협회가 생겼으며 2008년에는 분재가 사이타마시의 전통산업으로 지정되었다. 분재마을에서는 1984년부터 분재마을축제를 열어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일본의 분재는 중국으로부터 헤이안시대(794~1192)에 들어왔으며 분산(盆山), 발목(鉢木), 만든 소나무(りの) 등으로 불렀다. 가마쿠라시대에는 무사들의 취미로 사랑받았으며 에도시대 때 널리 확산되었다. 메이지시대 이후에도 분재 인구는 늘었고 특히 분재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장년층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이후 해외에 소개되어 일본어 발음인 본사이(盆栽)를 영어로 바꿔 ‘BONSAI’라고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