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3 (화)

  • -동두천 13.3℃
  • -강릉 17.5℃
  • 흐림서울 13.5℃
  • 맑음대전 14.3℃
  • 맑음대구 14.3℃
  • 맑음울산 14.7℃
  • 구름많음광주 15.0℃
  • 맑음부산 13.1℃
  • -고창 14.0℃
  • 맑음제주 14.7℃
  • -강화 11.1℃
  • -보은 13.3℃
  • -금산 11.2℃
  • -강진군 9.1℃
  • -경주시 14.5℃
  • -거제 13.1℃
기상청 제공

한국문화편지

조선 중종 때 쌓은 제주 구좌읍 돌성 ‘별방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73]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가면 시도기념물 제24별방진(別防鎭)”이 있습니다. 별방진은 1510(중종 5) 제주목사(濟州牧使) 장림(張琳)이 왜선의 정박지가 근처의 우도(牛島)에 있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김녕방호소(金寧防護所)를 이곳으로 옮겨 다시 쌓은 돌성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주목조에 보면 별방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 2,390(724m), 높이 7(2m)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문과 문 위에는 초루(성문 위에 세운 망루)가 있었으며, 옹성(甕城, 성문 밖에 반원형(半圓形)이나 삼각형으로 쌓은 작은 성) 3개소, 치성(雉城,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게 만든 것) 7개소가 있었으며, 성의 형태는 동서의 길이가 긴 타원형으로 둘레 1,008m, 높이 3.5m 정도입니다. 성 안에는 진사(鎭舍, 관아 건물), 객사(客舍, 각 고을에 둔 관사), 사령방(각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들이 모여있는 방), 군기고(軍器庫 무기를 보관했던 창고), 대변청(待變廳, 전함과 군기를 만들던 곳)을 비롯 흉년에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별창(別倉)을 갖춘 것으로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이었습니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순력하면서 그린 <탐라순력도> 가운데 별방조점에는 진의 책임자인 조방장(助防將) 1, 성정군(城丁軍, 진을 수비하는 군사들) 423, 목자(牧子, 마소를 관리하는 사람)와 보인(保人, 군사가 되는 대신에 베나 무명 따위를 나라에 바치는 사람)187, 말은 946, 검정소는 247마리가 있었고, 창고에는 곡식이 2,860 섬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상당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요. 지금 성 안에는 진사 등 관아 건물은 없어지고 민가가 수십 채 들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