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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어찌 그~리, 여자하고 똑같이 춤메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퉁소 명수들의 음악놀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함경남도 광천은 마을마다 즐겨 불 정도로 보편적이고 일반화 되어 있었던 악기가 바로 퉁소였다는 이야기, 마을을 대표하는 최고의 퉁소잽이들이 모여 겨루기 마당이 열리면, 멀리 다른 지방까지 가서 명인들을 초빙해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만강 넘어 연변 조선족 사회는 퉁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자체적으로 <퉁소예술절>을 개최할 정도라는 이야기, 함경도의 옛 명수들은 신아우를 잘 불었는데, 그 선율이 활달하고 전투적이어서 용사들의 우렁찬 개선가와도 같이 들린다는 이야기, 사자놀이는 퉁소음악에 맞추어 가가호호 방문하며 액운을 쫒아내고,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이야기, 김진무의 점받치 역할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재담꾼, 김진무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한다.

 

그는 80년대 초부터 원래 대학의 탈춤반 활동을 하던 탈꾼이었다. 당시 모 대학 축제장에서 신나게 탈춤을 추었는데, 이를 지켜 본 북청사자 놀이의 원로 보유자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80년대 중반, 전국민속경연에 북청사자놀이 팀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에도 그의 역할은 점받치, 곧 병을 고치는 의원(醫員)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 무대에 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역할은 의원이었으니, 그 역할이 어느 경지에 올라 있을까, 상상이 될 것이다.

 

함경도 지방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지방의 고유한 언어, 곧 특유의 사투리를 구사해야 한다. 사투리라고 하는 것이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으면 지역의 특징적인 발음이나 억양을 익힌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좁은 무대에서 활발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또는 이리 저리 딩굴면서 춤을 추던 사자가 쓰러지게 되면, 이때 의원이 나와서 부분 부분 만져도 보고, 눌러도 보며 사자의 몸 상태를 두루두루 살피면서 사자와 대화하듯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의원은 서울서 초빙된 전문인이고 지식인이기에 서울의 언어, 곧 표준어를 구사해야 한다.


 

80년대 초, 북청사자놀이가 전국대회에 출전했을 때, 김진무는 원로들이 지도해 준 그대로 표준어를 써가며 열심히 연기를 했는데, 생중계를 하던 당시의 해설자 모()씨는함경도 사투리가 어려워서 표준어를 구사한 것이 흠이라는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연희극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어설픈 해설의 피해가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을 알게 하는 이야기이다.

 

김진무가 북청사자놀이와 인연을 맺은 것도 알고 보면 춤을 좋아했고, 또한 열심히 했고, 매사 적극적인 성격이므로 잘 추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청사자놀이의 예능은 변영호, 전호준 명인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또한 같은 건물 안에는 박동신, 지관용, 양소운, 김금화, 장용수, 김경복 등 서도의 명인명창들이 진행하는 수업이나 소리판이 있어서 여기에도 자주 끼어들어 귀동냥을 하였다고 실토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서도지방의 소리나 그쪽 사투리도 매끄럽게 구사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민요와 배뱅이굿이 일품이었던 김경복에게 소리와 재담을 배우지 못한 것이나, 황해도 피리를 배우려다가 기회를 놓친 것을 지금도 후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통예술을 향한 애정이나 집념이 남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김진무는 넋두리 춤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이 춤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쉽게 되는 춤이 아니다. 특징적 춤사위는 양손이 거의 어깨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위에서만 춘다는 점으로 손목의 처리가 매우 중요한 춤이다. 마치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무희 장면을 연상하게도 된다.

 

퉁소 가락이 연주되고 그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되면 예전 명수들의 춤판이나 놀이 모임에서 춤추던 아바이들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냥 그 장면을 따라 그 속으로 들어가 몰입하면서 춤을 추게 되면 주위의 아마이들이 어찌 그~리 여자하고 똑같이 춤메?”하며 감탄사와 함께 칭찬이 이어질 정도라고 하니 그 수준이 짐작되는 것이다.


그의 장기가 탈춤, 사자놀이의 의원, 전호준에게 익힌 예능, 소리, 사투리, 넋두리 춤, 등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을 갖는 종목은 바로 애원성 노래가 아닐까 한다. 애원성은 아스랑가, 농부가 등과 함께 함경도 지역민들이 불러온 가장 보편적이고 토속적인 노래이며 현재 함경북도 무형문화재1호로 지정되어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과거 북청사자 공연할 때에 애원성 춤은 이근화선이 잘 추었고, 노래는 속초 김수석 아바이가 잘 불렀다.

 

경복궁 재건에 동원된 남편을 그리면서 아낙들이 불렀다는 그 노래가 너무도 좋아 김진무는 김수석에게 애원성을 배웠다고 한다. “경복궁 지어라. 경복궁 지어라. 삼각산 슬하에 경복궁 지어라 에~로 운을 떼는 애원성은 그 이후 동선본과 함께 한 무대에 서면서 그의 퉁소소리에 맞추어 호흡을 맞추어 왔는데, 소리와 퉁소의 조화는 상당한 공력이 느껴진다.

 

이북5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함경도 지방의 퉁소음악 이야기와 함께 이북의 재담꾼 김진무가 지닌 다양한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앞으로 퉁소신아우 활동이라든가 또는 퉁소 음악의 전승구조가 튼튼해 질 전망이어서 기대가 크다. 함경남도청과 도민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동 보존회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정례적인 발표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기 바란다. 아울러 옛 자료를 통한 복원과 연구발표, 전승자 양성, 교재발간, 작품발표회, 등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퉁소음악의 영역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