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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산신에 제사를 지냈던 <공주 계룡산 중악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94]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큰 산에 대한 믿음으로 오행사상(五行思想)에 따라 오악 곧 ‘5개 큰 산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5개의 큰 산이라 하면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을 꼽습니다만 신라 때는 토함산지리산계룡산태백산부악(父岳 : 지금의 대구)5대 산으로 여겼지요. 또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上岳)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下岳)으로, 가운데 계룡산을 중악(中岳)으로 하여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지만, 효종 2(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뒤 고종 16(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고 불렀지요.


 

그 중악단은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의 절 신원사(新元寺) 대웅전 뒤편에 있는 보물 제1293<공주 계룡산 중악단(鷄龍山 中嶽壇)>입니다. 이 중악단은 언덕땅(구릉지)에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자리잡게 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습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李重夏, 18461917)가 쓴 것이라고 전합니다. 중악단 안 가운데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지요.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 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특히 대문간채와 중문간채의 가운데 판문에는 신장상을 그렸고, 이들의 화방벽과 둘레의 담장에는 기와조각으로 수(). (). (), (), (), () 따위의 길상무늬로 꾸며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적가운데 현재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이 남아있지 않은 것에 견줘 중악단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