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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편지

과거 시험장, 응시생은 놀고 거벽이 대신 짓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5]

[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해 한 은행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부정채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며 10년 동안 보지 않던 필기시험을 부활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관리감독 부실로 부정행위가 잇따랐다는 언론보도입니다. 이런 부정시험이 조선시대 벼슬아치를 뽑던 과거시험에는 더 심했다고 《성종실록》과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먼저 과거장에 들어갈 때 예상답안지와 참고서적 등이 들어 있는 책가방 곧 “책행담(冊行擔)”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는 커닝의 고전적인 방법이지요. 따라서 과거장이 마치 책가게 같았다고 합니다. 또 과거장에 들어가는 사람 중 실제 답안지를 내는 사람은 턱없이 적었는데 예를 들면 정조 24년에 치른 과거는 10만 명 정도가 들어가 답안지는 3만 명만 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은 과거장에 여러 명의 조수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巨擘)”, 글씨를 써주는 “서수(書手)”가 따라 들어갑니다. 정작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도 까닥 안고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답안지를 다 쓰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선접군(先接軍)”이 있었습니다. 수만 장의 답안지를 며칠 안에 다 봐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답안지 앞부분만 보거나 앞에 낸 답안지만 채점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내는 것도 먼저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그저 컨닝 정도를 하는 것은 조선시대 과거에 견주면 애교에 불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