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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 로드’ 네팔 방문기

21세기의 실크로드 순례단장다운 병산의 멋진 대답

네팔 방문기 (5) 2월 5일 월요일

[신한국문화신문=이상훈 교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순례단장인 병산은 카트만두 시 외곽 파탄에 있는 힌두교 사원을 방문하자고 말했다. 네팔에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룸비니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팔이 불교 국가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네팔은 국민의 87%가 힌두교를 믿는 나라다. 그런데 병산은 뜻밖에도 파탄의 더르바르 사원까지 걸어가자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나는 이제 순례자가 되었기 때문에 순례단장의 말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따랐다.

 

세 사람은 순례 깃발을 들고서 세로로 5m 간격으로 떨어져서 걸어갔다. 파탄까지는 6km이므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신호등이 있는 시내를 통과하느라고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날씨는 이른 봄 날씨이고 또 바람이 없어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가 계속되어 걷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는 않았다.

 

길가에는 초라하고 낡은 집들이 보였다.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의 얼굴과 옷에서 가난이 뚝뚝 묻어났다. 길은 지저분하고 먼지가 났다. 아마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는 거리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게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펌프로 지하수를 품어 올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마을마다 작은 힌두교 사원이 눈에 띄었다. 팔이 여러 개 달린 여신상이 둘러싸는 작은 탑이 있고 주변에 향초를 태울 수 있는 작은 받침대가 있다. 받침대에는 대부분 향초나 꽃이 놓여 있었다. 입구 문은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관광객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2시간이 약간 넘게 걸려서 파탄에 도착했다. 여기도 지진 피해가 심했나 보다. 사원은 무너져 내렸고, 건물들은 파괴되었던 모양이다. 지진이 나기 전의 파탄 더르바르 광장 사진을 보여주는 커다란 안내판이 있었다. UNESCO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사원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2015년 지진으로 사원들이 무너지고 복구 작업을 3년이 지난 아직까지 하고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하여 병산이 휴대전화로 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가까운 한국 식당을 찾아내었다. 네팔 사람이 주인인 한국 음식점이 있었다. 주인은 한국에 노동자로 갔다가 돈을 벌어온 후에 음식점을 열었다고 한다. 반찬이라든가 음식 맛은 한국 음식을 모방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주방장이 한국 사람이 아닌가 보다.

 

병산은 순례단장으로서 모든 일정을 스스로 결정한다. 숙소를 찾는 일, 식당을 찾는 일, 교통편을 찾는 일 등 크고 작은 선택을 혼자서 결정한다. 사전 정보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순례 노선을 변경하기도 하고 숙박과 식사를 해결한다. 신라 시대에 혜초가 인도에 다녀온 후에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행문을 썼다. 그 시대에는 도로도 열악하고 오로지 두 다리에 의존하여 순례길을 혼자서 가느라고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내가 병산에게 물어보았다.

 

“지금이야 버스나 기차를 이용할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여행 정보를 미리 알아볼 수 있으니 순례가 한결 수월하지요. 그런데 옛날 혜초가 순례하던 시절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이나 강도를 만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무사히 4년을 여행했는지 궁금합니다. 병산이 혜초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나라면 고위 관리를 만나서 임금에게 바칠 귀한 선물을 동방의 신라국에서 가지고 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관리가 알아서 경호를 해주고 숙식을 해결해 주지 않겠어요?”

 

역시, 21세기의 실크로드 순례단장다운 멋진 답변이었다.

 

돌아오는 길도 걸어서 타말에 있는 호텔에 오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나는 일본인인 하라상을 배려해서 저녁식사를 일식으로 사겠다고 제안하였다. 하라상이 인터넷을 검색하여 좋은 일식집을 찾아냈다. 비행기 예약도 호텔 예약도 일식집 예약도 모두 슬기전화(스마트폰) 인터넷으로 할 수 있으니, 세계는 인터넷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은 이제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누구도 인터넷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모처럼 맛있는 일식을 먹고서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3일 동안 같은 호텔에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