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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김현곤, 이병우 명인을 만나 국악의 눈을 뜨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7]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우리음악사에서 황금기라고 말하는 세종 세조시대의 음악적 사건들을 알아보았다. 요약하면 아악의 정리, 편종과 편경과 같은 악기의 제작, 조회와 회례, 제례의 음악 제정,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여민락(與民樂),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과 같은 대악의 창작, 그리고 정간(井間)악보 및 오음약보(五音略譜)의 창안과 악보집 간행, 등이 주 내용이다.

 

또한 세종임금의 음감이 뛰어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우물에 편경을 숨겨놓을 정도로 귀중하게 다루었다는 이야기, 세종 이후에도 편경의 제작은 간간히 있었으나 1969년 이후에는 남갑진과 김현곤이 함께 해 오다가 현재는 김현곤 1인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편종이나 편경을 제작하기 위한 기술복원의 다양한 정보나 각종 기록은 김현곤 명인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제작한 편종과 편경을 1980년대 초부터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각 대학 국악과나 또는 전문 연주단체에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이전의 통설을 깨고 국내 유일의 편종과 편경의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명인이 된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인가?

 

김현곤은 60여년 이상을 동 서양의 악기제작에 종사하며 살아 온 사람이다.

 

처음엔 악기 판매 수리 전문점인 서울 충무로 있는 「연악사」에 입사하여 각종 양악기의 구조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발음의 원리와 각 악기의 제작재료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그에게 국악기에 대한 소개 및 기초이론을 전해 준 은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당시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이병우(李炳祐) 명인이었다.

 

 

이병우는 당시 해군 정훈악단에서 목관악기 오보에(oboe)를 연주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특별 출연으로 국악기인 피리를 연주하기도 해서 극찬을 받고 있는 연주자였다. 이병우를 통하여 궁중음악의 전승과정 및 국악기의 종류, 각 악기가 지닌 특성 등, 기초적인 이론을 습득하게 되었으니 국악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선생이 다름 아닌 이병우 명인이었던 것이다.

 

김현곤에게 국악의 눈을 뜨도록 지도해 준 이병우는 또한 어떤 사람인가? 그를 조금 더 소개해 보도록 한다.

 

<국립국악원>의 전신이었던 <이왕직아악부>에서 1919년부터 아악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였는데, 여기에 선발된 제1기생 9명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병우(1908~1971)였다.

 

그는 피리를 전공하고 졸업하였으나 피리 이외에도 단소나 양금 연주가 뛰어났으며 서양악기를 열심히 연마해서 <고려교향악단>에 입단했다. 거기에서는 오보에, 쎅스폰, 플릇 등 양악기도 잘 다루면서 때로는 국악기로 독주나 협주를 해서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전통가곡의 대가 이병성(1909~1960) 명인과는 집안의 형제지간으로 정통 국악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명가의 자손이다.

 

 

이병우, 이병성 형제는 조선조 헌종 때의 궁정악사였던 이인식(李寅植) 증조 할아버지의 후손들이다. 이인식은 피리의 명수였다. 이인식의 장자인 이원근(李源根) 역시 피리의 명수로 그들의 조부였고, 이원근의 장자는 거문고의 대가로 영산회상을 잘 탔다는 이수경(李壽卿)이다. 또한 이수경은 가곡의 대가인 두봉 이병성(李炳星)의 부친이고, 이병성의 장자가 국립국악원에서 가곡의 명인으로 활약해 온 이동규(李東圭) 명인이므로 실로 5대째 법통을 이어온 전통음악의 명가인 것이다. 그러나 이병우의 부친이나 또는 그의 자손들은 국악과의 인연이 분명치 않다.

 

하여간 국악의 명인 이병우로부터 국악기 및 이론에 눈을 뜨기 시작한 김현곤은 서울 종로 3가에서 <유한악기사>를 경영하게 되면서 동서양 악기의 원리를 터득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양주군에 성낙악기공장을 설립하여 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국악기제작 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80년대 초, <국립국악원>에서 국악기의 현대화와 악기개량 및 제작 사업이 추진되었을 때, 방향 등의 규격화 및 복원 작업을 의뢰받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국악기의 체계화 연구에도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된 것이다.

 

1960년대 말부터 편종, 편경의 복원 및 제작 사업은 고 남갑진 명장과 함께 시작하였다.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세계의 여러 민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전통 타악기의 각 공방들을 탐방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편종이나 편경을 제작하였던 중국은 수차례 방문하였고, 그 곳의 공방 장인들과 열띤 토론도 하면서 그들의 제작기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과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유교식 의례를 이어 오던 나라들이었으나 국가체제가 변화됨에 따라 유교의례에 따른 연주 전통이나 그 음악에 사용되던 악기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 심지어 베트남의 궁중음악인 나냑(雅樂)이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베트남의 편종, 편경 제작은 그 전승이 단절되어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다음 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