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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징의 외로움이 담긴 ‘강향란의 징춤’을 보고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69]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편종과 편경의 유일한 제작자, 김현곤 장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내 몸 이상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명품(名品)이 나올 수 없다”는 신념으로 악기제작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 조선시대에는 장악원이나 악기조성청과 같은 임시관청에서 만들었을 뿐, 개인의 힘으로는 제작이 불가했다는 이야기, 그는 중국 각지를 찾아다니면서 힘들게 경석 재료를 수입해 오다가 2009년 이후에는 경기도 남양의 경석으로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악기 제작의 전수, 이수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없어 장남과 차남에게 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능과 정신을 전승시키고 있다는 이야기, 문화재청에서는 편종과 편경의 분리문제, 재료비 지원문제, 전수조교의 확보문제 등 행정적인 배려를 서둘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전국의 대소 박물관, 각급학교, 공연장 등에 교육적인 전시가 이루어지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강향란의 징춤 이야기를 한다. 징춤이란 징을 들고 가볍게 울리거나 두들기면서 추는 춤이다.

 

얼마 전,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풀뿌리문화연구소>가 제작 기획한 –한국예인열전 공감(共感) 동락(同樂)- 공연이 있었다. 이 무대에서 대미를 장식한 강향란의 징춤은 일반 무대에서는 쉽게 대할 수 없는 춤이어서 객석의 호기심과 환호를 받았다. 강향란은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는 춤꾼으로 풍물세계의 외로움을 징의 애환으로 춤 속에 담았다고 토로한다.

 

 

오랜 세월 무동놀이의 광대 끼를 남사당 선대 예인들의 징놀이에 입혀서 이를 작품화한 춤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의 징춤은 일반적인 한국의 춤처럼 화려하고 그림같이 예쁜 춤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거친 느낌이 분위기를 잡아나간다. 그렇다면 징이란 어떤 악기인가?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징(鉦)’은 단일 음정을 지닌 타악기이다. 놋쇠로 쟁반같이 둥글게 만들고 크기는 일정치 않으나 지름은 대략 37Cm 정도에서 더 크게도 또는 더 작게도 만든다. 한 손으로 징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헝겊으로 끝을 감은 나무채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데, 민간에서는 주로 징이라 했고, 궁중에서는 대금(大金)이라 불렀다. 금징(金鉦), 금(金), 금라(金鑼), 라(鑼)는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타악기이다.

 

징은 군영에서 신호용 악기로 사용되어 왔으나, 군영음악의 확산으로 풍물놀이나 무속음악에서부터 ‘종묘제례악’, ‘대취타’, ‘불교음악’ 등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쓰이고 있다. 특히 종묘제례에서는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의식에서 대금십차(大金十次), 곧 징을 10회 침으로 해서 시작하는 의식이 있다. 소리가 크고 강한 관계로 모두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또한 징은 풍물놀이에서 꽹과리, 장구, 북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주로 강약을 조절하며 장단의 첫 박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강향란의 징춤은 굿거리-덩더꿍-휘모리-굿거리 장단으로 변화하며 전개된다. 처음 굿거리에서는 풍물세계의 서러움이나 외로움을 담고 있으며, 덩더꿍에서는 징을 치며 이를 풀어내고, 휘모리에서는 신명과 흥을 끌어올린 다음, 마지막 굿거리에서 아름답게 회항하고픈 춤꾼의 바람을 조용하게 마무리 한다.

 

그녀가 춤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도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몹시 병약하여 춤을 가르치면 다리가 튼튼해 질 것이라고 판단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춤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당시 인기를 모았던 <국보소녀가무단>에서 노래와 춤, 악기도 배웠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궁중음악과 정재무(呈才舞)를 익히는 한편, 한순서 명인에게 민속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뒤, 1983년 무렵 지운하 명인에게 풍물놀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남사당놀이에 입문하게 되었고, 무동(피조리)으로 활동하며 인형극이나 탈춤 등, 연희종목도 이수 받았으며 황해도 무형문화재 화관무도 이수를 받았다.

 

 

남사당이란 유랑연희 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전통적으로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모두가 가족 같은 관계로 뭉쳐져 있는 단체이다. 강향란은 그 속에서 무동춤이나, 무동놀이 역할을 연 120회 이상 소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풍물잽이들 뒤를 따라 다니는 무동(이를 다른 말로 ‘피조리’라고 부름) 역할에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또한 각 악기의 특징을 살린 장구춤이나 쇠춤, 북춤, 소고춤 등은 나름대로 널리 확산되어 있으나, 징은 장구나 꽹과리(쇠)보다 가락이 단순하다 하여 인기가 없다는 점도 그녀에겐 늘상 여운을 남겨주었다.

 

결국 무동 역할에 대한 소외감과 풍물 속에서 징의 외로움 등이 징춤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징춤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완성된 춤이 아니다. 남사당 풍물 판굿에서 꼭두쇠의 뒤를 징을 치며 뒤따르면서 조금씩 엮어나갔고, 풍물가락에 맞춰 메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잡기도 하면서 쇠가락에 실어 못다 푼 아쉬움을 달래며 푸는데, 10년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무거운 징을 들고 춤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돌다가 착지할 때 흔들림 없는 정지를 한다는 자체가 웬만한 훈련을 담보하지 않으면 무게중심을 잡기 어려운 춤이다. 그동안‘부평풍물축제’의 명인전을 비롯하여 ‘KBS 국악한마당’, ‘국악의 향기’, ‘명인 명무전’, ‘FIA 국제예술제’, ‘예인열전’ 등 여러 곳에서 선을 보여 왔다.

 

특히 이라크 전쟁 때 자이툰 부대와 자이만 부대를 방문하면서 위문공연을 한 것이 기억에 남고, ‘코스타리카 국제예술제’에서는 그 나라 대통령 앞에서 선을 보인 것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의 징춤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제 그의 춤이 한(恨)과 도(道), 그리고 흥(興)을 신명으로 풀어낸 남사당 무동이의 대표적인 풍물춤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평생교육원에서 “강향란의 풍물춤” 강좌를 열고 있고,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문화예술콘텐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