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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임시정부 노백린 참모총장 미국서 비행사학교 개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2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진 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통감부를 서울에 설치하고 한국 쪽 고관들을 초청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 자리에는 이완용, 송병준 등 소위 매국노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때 노백린 선생도 초대되었는데 선생은 이들 역신 앞으로 가서 “워리 워리”하고 개를 부르듯 불렀습니다. 이는 나라를 팔아먹은 개 같은 놈이라는 뜻이었는데 그러자 일본군 사령관 요세미치(長谷川好道)가 그것을 알고 칼을 빼들어 덤비려 하자 선생도 칼을 빼어 대결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이토 히로부미가 황급히 말렸지만 이 바람에 연회는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노백린 선생은 이렇게 무인으로서의 기백과 대쪽 같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지요.

 

 

1924년 오늘(5월 30일)은 노백린(盧伯麟, 1875.1.10. ~ 1926.1.22.) 선생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참모총장에 임명된 날입니다. 선생은 국권을 침탈한 일제로부터 회유와 협박으로 협력할 것을 수없이 압박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선생은 앞으로 전쟁은 육군보다도 공군력이 좌우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비행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지방 유지들을 설득하고 1920년 5월 연습용 비행기 2대로 역사적인 한인비행사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항공술을 배운 졸업생들은 의기가 충천하여 “도쿄로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고 말했다는데 독립전쟁을 위한 항일비행군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군역사상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선생은 1922년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1924년 4월 9일까지 국정을 통괄하며 임시정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같은 해 5월 30일에는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선생은 말년에 육군 정령 제복을 즐겨 입었으며 정복을 어루만지며 늘 향수에 젖어서 한국 군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신(自身)을 지켰지만, 심장질환이 악화되어 1926년 1월 22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한 양옥 단칸방에서 “말 타고 군인 정복 입고 남대문에 입성하면 참 좋겠다.” 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52살로 세상을 떴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