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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운 법, 노혜경 명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71]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2018 한국예인열전”에서 역동적이며 신명나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던 김윤미의 버꾸춤 이야기를 하였다. <버꾸>란 충청도 지방이나 전라도 지방에서 부르는 매구북의 딴 이름으로 소고(小鼓)를 말한다는 점, <법고>의 음성모음화 된 말이 <법구>이고, 법구를 연음화하여 된 발음으로 부르는 명칭이 <버꾸>라는 점을 얘기했다.

 

이 춤은 금당도의 풍물놀이에 속해 있던 소고잽이들의 춤가락을 기본으로 해서 무대화 한 춤이란 점, 버꾸를 돌리기도 하고, 차올리기도 하며 현란한 개인기를 발휘하여 매우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는 점, 마당놀이에서 볼 수 있는 크고 거친 동작들을 더 세련되게 무대로 끌어들여 객석의 반응을 고조시켰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살풀이춤>으로 객석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노혜경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살풀이 춤이란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수건을 들고 추는 춤이다. 수건을 들고 춘다고 해서 수건춤이라는 이름도 있고, 음악이 흐르는 대로 즉흥적 춤사위를 보인다고 해서 즉흥무라는 이름도 있다.

 

 

여하간 이 춤은 한국인의 멋과 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춤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살풀이춤을 가리켜 기(技)의 극치로 예(藝)에 이르는 춤이고, 예가 완성됨으로써 마침내 마음을 보이는 춤이라고 했다. 또한 정중동, 동중정의 신비스러움과 자유스러움, 그리고 환상적인 춤사위는 예술적 차원을 뛰어넘어 종교적 경지에 이른다고 극찬을 했다.

 

<살풀이춤>은 살(煞)을 푼다는 의미로 시작된 민속춤의 하나이다. 살을 푼다는 말은 무속의 신앙의식에서 액(厄)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옛적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을 추었는데, 살풀이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녀가 추는 즉흥적인 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후에는 이를 가다듬어 교방에서 기녀들이 추었던 독무(獨舞)로 전해져 오기도 했는데, 기방예술로서 수건놀음은 여인의 한풀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현재는 살풀이 장단이나 가락에 맞추어 추는 무대화된 전통춤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춤 솜씨를 최대한 발휘하는 춤으로 발전했다.

 

이 춤은 이매방류와 한영숙류, 김숙자류가 전해오고 있는데, 각각 섬세한 동작이나 교태미를 강조하기도 하고, 품위와 정숙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중 김숙자류는 도살풀이춤이라 하는데, 경기 도당굿의 굿장단에 맞추어 추며 매우 긴 수건을 양 손에 들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도살풀이, 살풀이, 또는 동살풀이와 같은 용어들은 시나위권에서 불려지는 살풀이를 두고 달리 부르는 이름들이다. 그러면 <살풀이춤>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된 말일까?

 

 

꼭 100년 전의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 아오야나기 고타로(靑柳綱太郞)ㆍ지송욱,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펴낸 조선 예기 611명의 화보집)》에는 기생의 기예로 <남중속무(南中俗舞-살푸리츔)>, 곧 남쪽지방의 민속무 가운데 살푸리츔이라는 명칭을 소개하고 있다. 100년 전의 춤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으나, 무용계에 대표적인 종목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후반, 한성준(韓成俊)이 <조선음악무용연구회> 이름으로 공연을 하면서 당시의 프로그램에 살풀이를 소개한 이후로 보고 있다.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노혜경도 어린 시절엔 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무작정 춤이 좋았다. 교회에 가서 율동을 배우며 특별한 행사 날에 무대에 서면 모든 사람들의 ‘예쁘다’는 칭찬에 열심히 춤을 추었고, 초, 중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한국무용과 발레를 이름 있는 스승들에게 배웠다. 그러다가 ‘전국학생콩쿨대회’에서 특상을 수상한 다음, 전공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수도여자사범대대 무용학과에 입학하여 한국무용을 전공하였다.

 

‘한국예인열전’ 무대에서 노혜경은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보여주었다. 그는 정갈하기가 이를 데 없는 흰 치마저고리에 흰 수건을 들고, 굿거리, 잦은몰이, 동살풀이 둥의 반주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듯 정지해 있고, 서 있는 듯 움직이며 흰 수건으로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나갔다. 살풀이춤에 있어서 흰 수건은 필수품이지만, 수건의 길이는 일정치 않아 지방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같은 지방이라도 춤꾼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에겐 항상 무대에 오르기 전이면 기억되는 말이 있어 이를 되새기고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스승을 모시고 해외 공연을 할 때였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스승이 다가와 조용히 전해 주는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고운 법이다”는 말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이나, 제자들을 지도할 때, 또는 일상 속에서도 그녀는 항상 스승의 이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무대에 서 왔고, 좌우명으로 삼고 정진해 왔다고 한다. 이 말이 어찌 살풀이춤에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다른 춤도 그러하고, 음악도 그러하고, 문학도 그렇고, 우리네 일상이 모두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노혜경 전통춤연구원>을 개설할 무렵이었다. 이매방 문하에 들어가 살풀이춤과 승무, 입춤, 검무, 등 지도를 받은 후, 살풀이춤의 이수자가 되었을 무렵, 그녀는 “라반의 움직임 분석을 통한 살풀이춤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무용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 승무의 작품 분석과 움직임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였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흔치 않은 학구파 춤꾼이다. 그밖에도 한국무용학회의 최우수 논문상, 이매방무용콩쿨에서의 지도자상 등이 그의 춤 이론이나 실기능력을 잘 말해주고 있다.

 

공부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길이다. 그에게도 10여년 세월은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었다. 이를 견뎌낸 인내의 시간이나 삶의 무게는 그대로 살풀이춤의 내면에 투영되어 그가 섰던 무대, 예를 들면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나 강남시어터 등에서 가진 개인 발표회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조용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춤은 살풀이가 되었던, 승무가 되었던, 또는 어떤 춤이 되었던 간에 오랜 세월을 인내와 끈기로 내공을 쌓으며 호흡과 집중력으로 몰입해야 겨우 춤의 형태가 나온다고 봅니다. 절제된 몸과 혼이 깃든 춤이 곰삭아 내면으로부터 표출되어야만 관객으로부터 공감과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뿌리 깊은 한국 전통 춤의 생명력을 이어받아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전통예술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하여 더욱 연구하고 열정적으로 무대에 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