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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충남 시조창은 윗내포와 아래내포로 구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75]

[신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남 부여에서 열린 2018년도 시조강습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 시조보존회는 7-80대가 주축이고 이론과 실기 강습회를 30년째 지속해 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계기로 회원 전원의 발표무대도 가졌다는 점, 시조창은 유행가의 의미로 가곡(歌曲)을 축소한 노래이며, 정제된 형식이나 선율의 유장미, 표현의 절제미, 발성의 장중미 등, 음악적 분위기가 유사하다는 점, 그래서 지식인이나 선비계층에서 즐겨 불렸다는 점을 얘기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등 여러 형태로 다양해 졌고 지역의 특징을 살린 <경제>, <내포제>, <영제>, <완제>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었다는 점, 충청지방의 내포제 시조창은 창법이나 말붙임, 부분적인 가락, 시김새, 표현법 등이 경제 시조와는 부분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필자는 일전에 있었던 강습 개회식에서 동료와 함께 곡조를 즐기고, 시조시를 암기하며 악보읽기를 배우는 시조창 부르기 운동이 노인을 위한 최적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충청남도에서 지정한 다른 지방의 시조창을 소개하려고 한다. 앞서 설명한 부여지방의 내포제 시조는 1992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예능보유자는 소동규 명인이었다. 그는 19세기 말 내포제시조의 명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미당 윤종선에게 내포제시조를 배워 간직해 왔다고 한다.

 

소동규 명인은 내포제 시조의 전승과 확산운동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해 온 시조인이었다. 그는 도(道)내의 시조인들을 규합하여 시우회를 조직하였고, 전용 시우회관을 건립하여 현재도 시조꾼들이 모여들고 있다. 또한 내포제시조 연구보존회도 설립하여 시조악보와 녹음 자료를 제작하는 등, 활발하게 내포제시조 전승활동을 해 온 명인이었다.

 

소동규의 뒤를 이어 제2대 예능보유자에 김원실이 인정되었고, 김원실이 작고한 이후, 현재는 제3대 김연소 보유자가 충남통합시우회와 부여시우회 원로들의 협조를 받아서 활발하게 부여지방의 내포제 시조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에 견주면 훨씬 뒤인 2012 봄, 서산지방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가의 명인 박선웅(예명-인규)은 서산지방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서산제시조>, 또는 <스판제시조>라고 칭하는 시조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하여 2년여 후에 지정을 받았다.

 

 

그러므로 충남에는 두 지방의 시조를 복수로 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먼저 지정한 부여지방의 내포제시조로 공식명칭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7-1호 <아래 내포제시조>이고, 또 다른 시조는 서산제 시조로 공식명칭은 17-2호 <윗내포시조>이다. 이처럼 아래내포제라든가, 또는 위내포제와 같은 용어는 급조해서 만들어 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국문학계나 국악계 학자들이 써온 공식명칭이기에 이를 원용한 것이다. 서산을 중심으로 한 태안이나 당진, 홍성, 예산 지역의 시조인들은 안내포시조라고 부르고 있고, 부여, 청양, 공주, 금산 지역은 외내포시조로 구분하고 있다.

 

이병기의 《가람문선》에 나타난 시조의 종류나 구분명칭과 관련된 내용을 참고해 보도록 한다.

 

“시조의 창은 퍽 숭상되었고 발달을 보았다. 그 창을 한평생 전문으로 하여 마침내 일가를 이루어 유파와 전승이 있었으며 그 거주하는 지방과 처소를 따라 고유한 명칭과 각기 독특한 창법을 발휘하여 왔다. 말하자면 경성에는 정악기, 판시조, 위댓시조, 사계집시조니 하는 따위가 있었고, 지방에서는 영남에 온령판, 반령판이니 하는 것이 있었으며 호중에는 내포제, 위내포제, 아래내포제니 하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파류가 있고 그 초파마다 그걸 배우는 이가 있어 기껏 잘해야 그 조백(早白)이나 알 뿐이요, 명창이 되기는 썩 어려운 것이다.”

 

시조가 고악보에서 확인된 것은 경제의 평시조가 최초이다. 이것이 각 지방으로 전파되어 그 지방 고유의 시조로 자리를 잡게 된다. 다음의 글은 이혜구의 《한국음악연구》 가운데서 「시조감상법」에 관한 내용을 담은 글이다. 지방별 시조의 종류가 다양함을 알 수 있고, 또한 그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토착화 되었으나 각각의 평가가 달라 시조의 명창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한다.

 

 

“악보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시조처럼 시비가 많은 것도 없다. 원래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고 하지만 유명하다는 갑(甲)이 방송한 후에는 을(乙)이 그것을 비난하고, 을이 하고 나면 또 병(丙)이 냉소하여 명창의 표준을 종잡을 수 없었다. 또 경판(경제)시조는 지름시조나 들을까, 그 평시조는 노랑목을 써서 듣기 싫다는 사람도 있고, 내포제 시조는 단가제라고 깎는 사람도 있고, 전라도시조는 사설시조를 치지 평시조는 안친다는 사람도 있고, 영판시조가 꿋꿋하고 속 깊고 구성져서 평시조로는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왼 영판은 너무 뻣뻣하여 경판을 섞은 반 영판이라야 듣기 좋다는 사람도 있어서 각각 지방에 따라서 평가가 다르다.”

 

여하튼 충청남도에 전해오는 시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그 명칭에 부여시조나, 또는 서산시조라는 작은 개념의 도시 이름보다는 국문학이나 국악학계에서 써 온 보다 넓은 개념의 지역적 용어들을 참고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산에서 박선웅이 배워 익힌 윗내포 시조는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고, 아랫내포와 견줘 어떤 음악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짚어 보아야 할 점이고, 또한 예능보유자 박선웅은 언제부터 그 어렵다고 하는 시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누구로부터 배워 익힌 소리이고, 현재의 서산에서의 활약상은 또한 어떠하며 무형문화재로써 위내포제시조의 전숭현황은 어떠한가? 하는 점들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