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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소리신동 박선웅, 시조창과 만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7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남지방의 무형문화재인 아래내포시조와 위내포시조를 소개하며 서산지방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서산제시조>는 넓은 의미의 위내포제 시조에 속한다는 점, 박선웅(예명-인규)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는 점, 시조인들은 서산, 태안, 당진, 홍성, 예산 지역의 시조를 안내포시조, 부여, 청양, 공주, 금산 지역을 외내포시조로 구분해 왔으나 이병기의 《가람문선》에는 위내포제, 아래내포제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 이에 따라 서산제시조의 계보라든가 전승 현황 등이 관심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박선웅 예능보유자가 서산제시조와 맺게 된 인연이라든가, 전승계보, 그리고 음악적 차이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문화재 지정을 위한 자료 참고)

 

충청지방의 시조는 내포제시조라고 부른다. 내포제는 위내포제와 아래내포제로 구분되는데, 서산 지방의 시조가 위내포제 시조의 중심이 된다고 해서 서산지방의 시조를 달리 <서판제>, 혹은 <스판제>라고 불러왔다.

 

위내포시조의 예능보유자 박선웅이 부르는 시조가 바로 서판제시조인 것이다. 그는 충남 서산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리신동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그는 민요 부르기나 장구연주, 또는 기교를 넣어 부르는 가요에 열중했다고 한다. 초파일이나 한가위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군이나 읍에서는 노래시합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 때마다 큰 상은 그의 차지였다고 하니 그의 재능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언제나 소리와 장구를 배우기 위해 읍내에 소리학원을 다녔다. 그가 다니는 학원에는 소리선생이 민요와 가요, 장구 등을 지도하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시조방이 있었는데 어느 날, 시조방을 엿보고 있던 그에게 사범은 시조 한 장을 따라 부르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범이 불러주는 대로 평시조 한 장을 따라서 불러 보았다. 그의 목소리나 가락을 옮기는 능력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사범은 “그 목으로 시조를 배우면 큰 가객이 될 것이네. 대단한 명창 재목이 여기에 숨어 있었네.”라고 극찬을 해 주었다고 한다.

 

 

시조방 사범의 권고는 환심을 사기 위한 지나가는 칭찬이 아니었다. 박선웅의 목소리나 시조창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사범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시조를 본격적으로 배워보도록 권유했다는 것이다. 사범의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그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시조 사범은 그가 장차 시조계에 큰 명인이 되리라고 예견한 분으로 내포제 시조로 유명했던 유병익(1913-1980)이라는 사범이었다.

 

시조창의 여운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던 그는 흥겨운 민요가락보다는 점잖게 뻗어나가는 시조 선율이 더더욱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조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시조 공부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유 사범이 그에게 시조 배우기를 권하지 않았다면, 또한 그 제의에 그가 응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는 시조꾼이 아닌 민요 명창이나 장구 잘 치는 악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유병익 사범으로부터 서산내포제 시조를 익힌 다음, 서울의 박기옥에게 석암제 시조를 배우기도 하였다. 당시 석암 정경태가 짠 시조가 전국적으로 크게 보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조꾼들은 너도나도 석암제 시조를 배우는 분위기였다. 박선웅은 시조뿐 아니라 홍원기, 김경배 등에게 가곡과 가사까지 배웠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시조를 비롯한 가곡이나 가사창 부르기에 전념했는가 하면, 전국시조경창대회 특부 1등, 대한시우회 주최 전국시조대회 명창부 1등, 제2회 백제예술제 시조경창대회 대통령상 등, 굵직한 수상 실적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어서 그는 세종대상 시조경창대회 대상부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전국규모의 큰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충남도지회 시조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수시로 서산시에서 내포제시조 강습회와 정가발표회를 열고 있다. 또한 무형문화재 전수생들을 지도하는 한편, 그의 시조창을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는 전국의 유명 시조꾼들도 지도하고 있다.

 

박선웅이 부르는 서산제 시조의 전승과정은 어떠한가?

 

 

그가 부르고 있는 시조창제는 시조의 멋을 느끼도록 안내해 준 유병익 사범을 통해 배운 시조창이다. 유병익 사범은 홍성의 시조꾼 이종승과 서산의 이문교에세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종승은 유환경으로부터 익힌 시조창을 1900년대 초부터 서산, 태안, 당진, 홍성, 예산, 천안 등지에서 악보를 제작하여 지도하고 있던 대 사범으로 유명한 시조꾼이었다.

 

또한 이문교의 유음은 현재 가사문화재 보유자인 이양교의 소리나 악보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위내포제 시조창의 계보는 유환경-이종승-이문교-유병익-박선웅으로 이어지는 소리제로 정리되고 있다. 그 외에도 1950-1960년대 서산시우회에는 유병익, 김두희, 박승원, 홍순범 등 여러 명창들이 시조를 불러왔으나 오늘날에는 박선웅이 유일하게 서산내포제의 부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내포제 시조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창법이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곡태(曲態, 음악의 표현 기법) 또한 유연하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포의 사투리와 그 곳 지역민들의 유순한 성격이나 기질이 접목되어 노랫말이 구수하게 변모되어 불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경제의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종장은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어떠리)”인데, 서산제는 “명월이 만공산하니 수염수염”으로 부른다.

 

평시조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적인 장단수도 경제에 비해 짧게 구성되어 있다. 경제 평시조의 경우, 초장의 박자 수는 초장이 5박+8박+8박+5박+8박으로 34박자이고, 중장 또한 5박+8박+8박+5박+8박으로 34박이다. 그리고 종장은 5박+8박+5박+8박으로 26박이어서 총 박수는 94박이 된다.

 

이 수치는 초장이나 중장의 반주악기 여음을 포함한 것이며 종장의 마지막 8박은 첫 박에서 끝남으로 나머지 7박을 빼면 87박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서산제시조는 여음 가락을 생략하고 있어서 이보다 10여박 짧게 부르고 있다. 이러한 변모과정은 해방 전후에 제작된 이종승의 선율악보나 1960년대의 악보를 참고해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시조창이지만, 오늘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은 시조를 잊고 있다. 요새처럼 더운 여름, 산에 올라, 또는 그늘에 앉아 긴 호흡으로 부르는 시조한 수 읊고 나면 옛 선비의 기개와 멋을 느끼게 되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특징을 담고 있는 시조가 보다 더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박선웅 명인과 안종미 보존회장을 비롯한 여러분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