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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넓게 보기

좋은 것이 그리 많다는 ‘평양구경’ 언제나 가보려나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8월호 ‘평양, 그곳’ 펴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반도 평화 시대, 우리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역에서 경의선 열차 타고 평양 구경 가자꾸나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일, “평양, 그 곳”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8월호를 발행하였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이후, 서울과 평양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그날에 대한 갈망들이 커져감과 동시에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스토리테마파크에서는 한반도 평화시대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찾아낸 갖가지 재미있는 ‘평양’이야기를 준비하였다.

 

조선 시대 평양으로 떠나는 하루 여행 코스

연광정, 부벽루, 을밀대, 모란봉에 대동강 뱃놀이까지

 

 

평양은 중국 사신들이 한양에 왕래하면서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기 때문에 둘러 볼만한 명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딱 하루만 평양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평양의 여러 명소 중에서 어디를 둘러봐야 할까. 어디든 나름의 정취가 있겠지만, 그래도 평양 하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이은주 강의교수가 추천하는 평양 하루 여행 코스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코스로는 대동문을 지나 대동강 가에 있는 연광정을 둘러보고, 두 번째 코스는 부벽루와 북성 일대를 방문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고, 세 번째 코스는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긴 후에,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날이 어둑해질 때면 네 번째 코스로 애련당을 찾아가 달밤의 호젓한 정취를 맛보는 것이다.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 벌인 잔치

말 탄 기녀가 횃불을 잡고 춤추고 노래하다

 

조선시대 연광정이나 부벽루 같은 전각에서는 기생들의 춤과 노래를 즐기는 잔치가 벌어지곤 하였다. 대동강가의 아름다운 풍광과 풍류를 즐긴 옛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16세기 초, 권벌(權橃)이란 벼슬아치가 1539년(중종 34) 7월 17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연경(燕京)에 다녀오면서 남긴 《조천록(朝天錄)》에 그 자세한 기록이 실려 있다.

 

1539년 8월 9일 사신단 일행은 평양에 도착하여 재송정(栽松亭)에서 일단 차를 한 잔 마신 후, 대동강으로 향한다. 감사 김인손이 배를 띄우고 풍악을 울리며 술자리를 베풀었다. 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부벽루에 올라 밤이 다 가도록 술을 마셨는데, 기녀가 말을 타고서 횃불을 잡고 춤추며 노래하였고, 악공들은 걸어가며 음악을 연주하였다. 사신단 일행은 이로부터 4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은 이후 8월 13일 아침에 평양을 떠나갔다.

 

 

연행 사신이 한양에서 출발하여 의주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는데 국가의 공적 임무를 띠고 가는 사신이므로 각 관청에서 숙식을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사행을 떠나는 벼슬아치들은 자신이 머무는 고을에 임금의 명을 받드는 사신이라 하여 종종 요란한 접대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특별한 장소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대로변의 큰 고을 수령은 물론, 근처 작은 고을의 수령까지 와서 문안을 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했다.

 

반면, 중국에 들어서게 되면 사신단 일행이 받게 되는 대접은 매우 굴욕적이었다. 중국에서 우리에게 오는 사신 접대는 “칙사(勅使) 대접하듯”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융숭한 대접을 했건만 그쪽에서는 지방관들이 마지못해 중앙의 지시에 따르는 체하지만 무성의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는 사행단(使行團)의 숙소가 겨울에도 난방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찢어진 창호도 바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서 우리 선발대가 미리 가서 문도 바르고 청소도 해야 할 정도였다.

 

평양을 대표하는 네 가지 키워드

평양냉면, 기생, 평안감사, 평양 대부흥

 

분단 이후 평양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평양에 관한 이야기는 언론과 매체를 통해 쉽게 전해들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평양냉면이다. 판문점 회담이 열리던 지난 4월 27일, 옥류관 평양냉면이 만찬에 나온다는 소식에 전국에 이름난 평양냉면집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메밀로 국수를 뽑아 만드는 평양냉면은 폭염을 잠시 식혀주는 여름철 음식으로도 유명하지만, 겨울철에도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겨울철 별미이기도 하다.

 

온나라 기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평양으로 모여들었으며, 평안감사는 가장 좋은 관직으로 손꼽혔는데, 이는 평안도와 함경도의 조세가 중앙으로 상납되지 않고 관향곡이라 하여 지방에 비축해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평안감사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넉넉한 비용을 쓸 수 있었다. 곧, 평양은 권력과 돈이 모이는 곳이었기에 온나라 으뜸 기생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살았던 선인들의 기록에 평양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다. 첫째는 단군과 기자, 동명의 도읍지로서의 평양이다. 1325년(충숙왕 12) 평양에 기자 사당이 세워졌고, 1356년(공민왕 5)에 이를 중수한 것은 고려 후기 주자학이 수용됨에 따라 유교문화의 시원으로서 기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동강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평안감사가 주최한 화려한 잔치와 풍류에 관한 기록이다. 조선시대 평안도 지역은 중국과 접경 수비를 위하여 공물과 부역 등 세수를 중앙으로 모으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영하였고, 조선후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다른 지역에 견주어 물산이 풍부하였다. 이에 평양감사의 위상과 권한 또한 높았다. 셋째는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과 관련한 기록이다. 이밖에도 평양의 유생이 조선의 최고 학자 퇴계 선생의 흔적을 찾아 안동 도산서원에 왔다는 기록 등이 있다.

 

역사콘텐츠 창작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 공간, 평양

선인들이 만났던 평양의 모습 담긴 일기류에서 창작소재 발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바탕으로 4,27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 달 편집장을 맡은 천준아 작가는 “포항에서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등 북한과의 자유로운 왕래가 머지않았다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 조선 시대 평양으로 피서를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8월호를 기획하였다고 하면서, “역사콘텐츠 창작에 있어서 평양은 새로운 스토리 공간으로 활용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으며, 선인들이 방문했던 평양에 관련한 일기류 소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 콘텐츠가 창작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