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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음(音)은, 사람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8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좌창 초한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음절은 비교적 규칙적이나 장단은 2, 3, 4박 등 불규칙적이어서 가락을 모르면 장단을 칠 수 없다는 이야기, 정악곡의 백미라고 알려진 수제천이라는 음악도 쌍(雙)-편(鞭)-고(鼓)-요(搖)로 진행되는 매우 간단한 장단형이나 장고 연주자가 각 악기군의 선율을 훤히 꿰고 있지 못하다면 연주가 불가하다는 이야기, 판소리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표현으로 고수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서도의 좌창에서도 반주의 역할은 절대적이란 이야기, 초한가의 노랫말속에 “산 잘 놓는 장자방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 해산할 제”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전쟁터에서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서도록 만드는 악기의 존재, 음악의 위력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통소(洞簫), 또는 퉁소라 부르고 있는 관악기는 대나무로 만들어 세로로 부는 종취악기의 하나다. 일부지방에서는 퉁수, 퉁애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초한가에 나오는 옥통소는 옥으로 만든 통소이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원래 고대의 중국 아악기 중에서 현악기로는 금과 슬이 대표적이고 관악기로는 훈(塤), 지(篪), 약(籥), 적(篴), 소(簫)등이다. 그런데 이 악기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음량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소’라고 하는 관악기는 밑둥이 막혀 있는 형태이며 소리내는 요령은 단소와 같이 윗 부분에 U자 형태의 취구를 파고 입술에 대고 소리를 낸다. 이에 통소라는 악기는 소에 견주어 훨씬 길고 굵은 편이다. 통소라는 이름도 아래 위가 모두 통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통소는 그 제작연대도 소 보다는 뒤에 생긴 악기로 추정된다. 무엇보다도 통소에는 소리의 울림을 더하고 더더욱 처량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청공(淸孔)이 뚫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공이란 소리의 떨림을 더더욱 강하게 연출하기 위해, 또는 애절함이나 처량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구(吹口,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손가락으로 막는 구멍)사이에 구멍을 내고 갈대의 속청을 붙여 놓은 구멍을 이른다. 이로 인해서 소리의 떨림이 더욱 구슬프게 들리는 것이다.

 

원래 통소는 중국 송나라의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때 유입되어 주로 당악을 연주해 왔으나 현재는 궁중음악에는 거의 편성이 되지 않고 민간음악, 특히 시나위, 산조, 사자놀음 등에는 매우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대부분의 관악기들, 세로로 불던, 가로로 불던, 길이나 굵기에 관계없이 부는 악기들은 모두 퉁소요, 피리라고 불러댄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일 서양의 금관이나 목관의 여러 악기들을 각각의 고유한 이름이 있는데도 이를 모두 나팔이라고 부르거나 플륫으로 부른다면 무식을 들어낸다고 할 것이다.

 

전해오는 말에 <10년 퉁수>라는 말도 있다. 오랜기간 공력을 쌓아야 그 소리를 들을 만 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퉁소라는 악기는 딱히 통소만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모든 관악기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이름일 것이다. 실제로 통소나 단소를 비롯한 관악기들은 소리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악곡을 듣지 않아도 발음하는 방법이나, 그 수준을 보면 대략 공력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소리를 제대로 내고, 그 위에 공력이 쌓이고, 거기에 음악성이 가미되면 비로소 듣는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모든 악기의 공통점이라 할 것이다.

 

초한가에 나오는 장자방이 사향가(思鄕歌)를 불어서 팔천명이나 되는 적의 군사로 하여금 전의(戰意)를 잃고 흩어지게 했다는 그 소리는 어떤 수준이었을까? 아마도 대단한 음악성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문득 음이란 사람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곧 “범음지기 유인심생야(凡音之起 由人心生也)”라는 말이 기억난다.

 

 

전쟁도 사람이 하고 음악도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악(惡)한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악기요, 음악이란 점에서 음악의 존재, 음악의 가치가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남는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이며 대문장가인 소동파(소식)의 <적벽부>에도 통소를 잘 부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간단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소동파가 어느 가을, 적벽강 하류에 배를 띄우고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읊고, 술잔을 나누면서 흥에 겨워 뱃전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퉁소를 잘 부는 손님이 있어서 노래를 따라 퉁소로 화답(和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손님의 퉁소 소리가 보통의 소리가 아니라 너무도 구슬픈 소리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기성이 명명연(其聲鳴鳴然)- 그 소리가 멀리 멀리 울려 퍼지는데,

   여원여모(如怨如慕)- 마치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여읍여소(如泣如訴)- 우는 듯 하소연 하는 듯,

   여음뇨뇨(如音嫋嫋)- 여음은 바람에 흔들려 예쁘게 퍼지고,

   부절여루(不絶如縷)- 끊기지 않고 실같이 이어져 흘러가니,

   무유학지잠교(舞幽壑之潛蛟)- 골짜기 물에 잠긴 교룡(蛟龍)이 춤을 추고,

   읍고주지리부(泣孤舟之釐婦)- 외로운 배에 의지한 과부가 우는 듯.

 

퉁소의 즉흥연주가 어떠했는가 하는 점은 이상의 구절에서도 충분히 그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소자(蘇子)가 옷깃을 바로하고 퉁소를 연주해 준 손님에게 묻는다.

 

"어찌해서 그토록 구슬픈가요?"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