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韓文馬史千番讀 한유 문장 사마천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
菫捷今年進士科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 스스로 한 말입니다. 이 김득신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 ~ 1822)과는 동명이인이지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를 천 번을 읽은 뒤에야 겨우 진사과(합격자에게는 성균관 입학 자격과 문과 응시 자격을 줌)에 합격했다는 자기고백입니다. 책 한 권을 천 번 읽는 것도 기가 막힌데 심지어는 《사기》 백이전의 경우 1억1만3천 번 읽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때 억(億)은 10만을 뜻한다고 하니 11만3천 번을 읽었다는 말이지요.
그는 그밖에도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이나 된다고 했으며, 1만 번 넘기지 않은 책은 기록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다산 정약용은 “백곡이 읽었다는 사마천의 사기도 발췌본을 읽은 것이지 책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장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댄 백곡에 대해 어떤 이는 ‘독서의 끝판왕’일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 백곡에게는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백곡은 한식날 말을 타고 들에 나가다가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이란 오언시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이에 마땅한 대구를 찾지 못해 끙끙댔는데 이때 말고삐를 잡은 하인이 대뜸 “도중속모춘(道中屬暮春)”이라고 외칩니다. ‘말 위에서 한식을 맞이했으니 길 가는 도중에 늦봄 되었네.“라니 얼마나 멋진 시구입니까? 이에 감탄한 백곡이 하인에게 ”네 재주가 나보다 낫구나. 이제는 내가 말고삐를 잡아야겠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 구절은 나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唐詩)‘ 아닙니까?“라고 했다지요. 백곡은 책을 엄청나게 읽었지만 그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음을 이야기해주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