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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서도소리, 전승자 극소수로 위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8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수심가(愁心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노랫말의 “약사몽혼 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 문전석로 반성사(門前石路半成砂)로구나”의 의미는“만약 님의 혼이라도 꿈에 다녀간 흔적이 있다면, 문 앞 돌길의 반은 모래길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상대를 그리워하는 절실함의 표현이라는 점, 2장의 형식의 구성으로 각 장은 안구(句)와 바깥구로 짜여 있어서 간결하다는 점을 말했다.

 

“북에는 수심가, 남에는 육자배기”라는 말처럼 북쪽의 대표적인 소리가 수심가라는 점, “대동강 물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소리 흉내내기 어렵다.”는 말이 전해 오듯이 독특한 표현법의 처리가 쉽지 않다는 점, 특히 떠는 소리는 목을 조여 가며 치켜 떠는 목구성으로 처음엔 좁게 떨다가 점차 확대되면서 격하게 떠는 졸름목(졸음목)의 독특한 요성법을 쓴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처럼 서도소리에서는 그 요성법이 격하고 독특하지만, 경기민요의 요성은 대체로 음폭이 크지 않고 평이하다. 또 남도창에서는 음폭이 크고 격렬해서 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음을 떠는 형태도 서도소리와 경기소리, 그리고 남도의 소리가 다르다는 점이 마치 지역의 독특한 언어와 관계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랫말과 가락의 표현법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요만큼 지방색이 뚜렷한 노래도 드물다고 해야 한다. 지방마다 말이 다르고,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민요에도 지방색이 나타난다고 하겠다. 이것은 곧 노래를 구성하고 있는 음조직이나 음계, 부르는 창법이 다르고, 그 위에 장식음 처리나 시김새 등, 표현방법이 다양하고 독특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음악문화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고 하는 점이, 바로 서로의 특징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이 서로 다르고, 같은 동양이라도 동쪽과 서쪽나라의 음악이 서로 특징을 지니고 있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음악을 좋아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서로 다른 문화에 우열을 가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허튼소리(넌센스)일 뿐이다.

 

음악적 요소뿐만이 아니다. 노랫말의 구사에 있어서도 서도소리는 황해도나 평안도 지방 언어의 억양이나 강약 등을 살린 표현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언어의 활용은 선율의 연결에서도 자연스럽지 못한 법이다.

 

우리가 가끔 영화나 연극, TV연속극을 보게 되면 배우들이 경상도나 전라도, 또는 평안도나 함경도 지방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일반인들은 배우가 구사하는 언어를 마치 그 지방의 전통적인 지역의 사투리로 믿고 있지만, 지역 토착민들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쉽게 발견한다. 지역의 고유한 언어는 누구에게나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법이다. 말이 그러한데, 하물며 음악에 있어서의 표현법이 얼마나 독특하겠는가 하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수심가를 비롯한 서도지방의 민요창이나 좌창, 입창(선소리), 시창, 창극조 그리고 또한 발림엮음이라든가 신조(新調)엮음, 등 훨씬 뒤에 생긴 대부분의 서도소리들이 수심가의 표현법을 본뜨고 있다. 그래서 서도지방의 소리제를 일반적으로 <수심가조>, 또는 <수심가토리>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수심가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긴잡가의 경우에도 노래 끝에서는 수심가로 끝내고 있어서 수심가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긴잡가로 통칭되고 있는 서도의 좌창곡들이 많은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 짚는다면 <초한가>, <공명가>, <제전>, <배따라기>, <영변가> 등 5곡에 지나지 않는다. 그밖에 <장한몽>은 일본 소설 <금색야차>를 줄여서 부르는 소리이고, 또한 <공명가>의 가지로 <사설공명가>나 <별조공명가>도 있고, <잦은배따라기>는 배따라기의 대칭이다. 대부분은 마지막 부분에서 수심가로 맺고 있어서 수심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서도지역에서 이러한 소리제는 언제부터 불러온 것일까? 격렬한 졸음목의 요성 창법이라든가 추성이나, 퇴성((退聲, 흘러내리는 소리나 꺾는 소리) 창법 등을 구사하며 느리고 구성지게 읊듯이 자유스럽게 이어가는 수심가조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전해지는 말로는 고려 왕조를 몰락시키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관서지방 사람들에게 벼슬을 주지 않게 되자, 그 설움을 노래에 실었다는 설이 퍼져있고,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성천의 기생, 부용이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그 슬픈 곡조는 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민중들의 입을 거치면서 더욱 구슬프게 변화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벼슬길을 막은 것이 원망과 슬픔이 되어 소리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수심가는 낮은 음으로 시작해서 점차 상행한 다음, 서서히 내려와 끝나는 형태와 처음부터 고음으로 시작한 다음, 점차 내려와 저음으로 끝나는 형태가 있으며 어느 것도 허무한 인생을 한탄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목청을 떠는 형태가 독특하여 졸음목을 사용한다거나, 장단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노래하기도 하고, 골격음 하나하나에 잔가락이나 시김새가 붙어 기교를 요하는 대목이 있어 자주 들으면 친숙해 지는 소리들이다.

 

 

수심가를 비롯한 서도지방의 소리들은 먼 장래를 내다보며 남쪽지역에서 충실하게 보존하고 전승해야 한다. 왕래가 되고 통일이 되면, 그대로 그 지방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경서도 소리를 전공하고 있는 소리꾼들에게 있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이를 지켜나가기 위한 여러 정책이나 제도, 뒷받침은 당연히 문화와 예술을 관장하는 정부 기관에 있다는 점도 이 난을 통해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대책을 바란다.

 

서도소리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이 지역의 소리를 전문으로 계승하려는 젊은이들이 극소수라는 점과 서도지역이나 함경도 지방은 문화 예술의 변방으로 취급되어 그 지역의 독특한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북쪽에서 내려 온 전문예인들은 이미 거의 노쇠하였거나 타계한 상태여서 올바른 전승이 용이치 못한 상황이다. 특별관리가 필요하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서도소리는 올곧게 보존되어야 하고 전승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 권역의 다양한 문화와 독특한 예술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바로 대한민국이 높은 문화 수준을 구축하게 된 배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