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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왕실의 보양식이었던 소젖(우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4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소젖 곧 우유를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우유를 마시는 풍습은 고려시대에 원나라 영향을 받으면서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왕실에서 보양식으로 올릴 정도로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세종실록》 5년(1423) 4월 4일 치 기록에 보면 “충청도 감사에게 ‘청주의 나라 창고에 있는 묵은 쌀ㆍ콩으로 젖소를 사서 날마다 우유를 받아 양녕대군에게 먹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젖 짜는 소를 특별히 길렀는데 말을 기르는 것과 함께 사복시라는 기관이 담당했지요. 1445년 사복시 제조 이사검의 보고에 따르면 군사용으로 길렀던 말은 3만 2,198마리였고, 소는 대략 2만 3,500마리였다고 하니 말에 못지않게 소를 길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조영석이 그린 <우유 짜기>란 그림에 보면 소젖을 짜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유를 짜는 데에는 갓을 쓴 선비 네 사람이 동원되었는데 한 사람은 송아지를 잡고, 다른 두 사람은 어미소의 머리와 다리를 붙들고, 또 한 사람은 젖을 짜는 등 쩔쩔 매고 있습니다. 또 소와 사람들 뒤에는 송아지가 있는데 어미젖이 나오게 할 유인물이었던가 봅니다. 다만, 《영조실록》 25년(1749) 10월 6일 치 기록에 보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전례에 따라 우락(牛酪, 치즈)을 올렸다. 하루는 임금이 암소의 뒤에 작은 송아지가 졸졸졸 따라가는 것을 보고 마음에 매우 가엾이 여기며 낙죽(酪粥)을 올리지 말도록 명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