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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무계원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인 전통가곡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무계원에서는 올 2018년에도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풍류산방이 시작된다. 풍류(風流)란 음악이고 노래이고 춤이며 넓은 의미로는 다양한 놀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산방(山房)이란 산에 지어 놓은 집이다. 그러니 산방에서 국악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소리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는 방중(房中)악회가 바로 풍류산방이 겠다. 올 2018년도에도 종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종로구청이 후원하여 4회에 걸쳐 열리는데, 첫회는 11월 24(토)이고 이로부터 12월 1일, 8일, 15일 등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첫 회는 엊그제 첫 눈이 내리던 11월 24일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남녀창 가곡과 가야금 연주를 필자의 해설로 감상하였다. 가곡감상에 앞서 먼저 대금독주곡으로 <상령산>을 전인근의 연주로 소개하였다. 대금 연주자, 전인근은 국악의 명문 중-고-대학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정통파 연주자이다.

 

그는 낮으막한 소리로 평조회상의 상령산을 불기 시작하더니 곧 <청성잦은한잎>으로 옮겨서 청소리를 쩡쩡 내며 고음으로 치닫는 연주를 하는 것이다. 고요한 산 중에서 그것도 마이크를 쓰지 않는 상태에서 원음 그대로 듣는 젓대의 소리는 도심에 찌들은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씻어 주기 시작한다. 가곡을 감상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대금은 가로로 부는 관악기로 예전에는 <젓대> 또는 <저>라고도 불렀고, 《삼국사기》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만(萬)은 많다는 뜻, 파(波)는 물결, 또는 주름으로 근심 걱정이라는 뜻, 식(息)은 쉼이나 멈춤, 적(笛)은 피리이다. 그러므로 “많은 근심 걱정을 종식시키는 피리”라는 의미다.

 

부왕을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지은바 있는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이 어느 날 동해에 나갔다. 일관(日官)이 “동해의 작은 산이 떠다니는데, 그 산 위에는 대나무가 있는바, 낮에는 둘로 밤에는 하나가 된다.”라는 보고를 했다. 그 연유를 알아본 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징조이니 그 대나무로 저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는 것이어서 그 대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고 한다. 가뭄에 불면 단비가 내리고, 장마에는 비가 그치고, 전쟁 때에는 적병이 물러가고, 괴질이 사라져서 이를 만파식적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고사(古事)이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여서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내용이다. 대금의 음색은 정말 아름답다. 산중에서 듣는 그 소리는 더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곡의 감상시간이다.

 

 

먼저 박문규 명인의 창으로 남창 가곡 중 언락(言樂)이라는 곡을 들었다. 전통가곡은 5장 형식으로 세련되어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창법, 장단형태 등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노랫말을 읽어보고 감상하였다. 노랫말을 소개한다.

 

남창 가곡 중 <언락(言樂)>

(1장) 벽사창(碧紗窓)이 어룬어룬커늘, (2장) 임만 여겨 펄떡 뛰어나가 보니

(3장) 임은 아니 오고 명월이 만정(滿庭)헌테,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 목을 후여다가 깃다듬는 그림자로다.

(4장) 마초아, (5장) 밤일세망정, 낮이런들 남 우일번 허여라.

 

창이 어른거려 님이 온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는데, 오동나무위에 앉은 봉황이 깃을 다듬는 그림자였다. 마침 밤이었으니 다행이지 낮이었다면 남을 웃길 뻔했다는 남녀의 연정을 노래하고 있는 내용이다.

 

장별을 보면, 시조시 초장의 안 구(句)는 가곡의 1장이고, 바깥구는 2장으로 구분된다. 시조시 중장 전체는 가곡의 3장으로 분류되고, 가곡의 4장은 시조시 종장의 첫 3음절인 3글자이며 이후는 5장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가곡의 형식은 가사가 길고 짧던 간에 전체가 5장 형식이란 점이 특징이다. 처음 시작 전에는 악기들의 전주가 나오는데, 이를 대여음(大餘音)이라 부르고, 3장과 4장 사이에는 노래는 쉬고 악기들만의 연주, 곧 중여음이 연주된다.

 

 

박문규 명창이 불러주는 남창 가곡 언락은 빠르기도 적절하고 즐거움에 취해 거침없이 산중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하였다. 강할 때는 거침없이 휘몰아치고, 약할 때는 모두 숨을 죽이며 창자와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다. 가사의 의미도 이해되었고, 형식이나 장단의 흐름도 알게 되면서 가곡의 멋은 더더욱 산방의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여 나가는 듯 했다.

 

이어서 황숙경 명창은 여창 가곡 중에서 우락(羽樂)이라는 곡조를 불러 주었는데, 모두들 숨을 죽이며 그가 안내하는 여창가곡의 세계를 함께 따라가고 있었다. 노랫말의 의미를 모르면서 목소리만을, 또는 가락의 연결만을 쫒아가는 일반 연주회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곡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청중들은 실토한다. 특히 남창가곡의 무게와는 달리, 독특한 속소리, 여창 가곡에 나타나는 가성의 창법은 그 특징을 너무도 아름답게 인식시켜 준 창법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창 가곡 <우락>의 노랫말이다.

 

(1장)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2장) 궂은비는 붓듯이 온다.

(3장) 눈 정(情)에 거룬 님을 오늘밤 서로 만나자하고, 판첩쳐서 맹서

받았더니 이 풍우중에 제 어이오리,

(4장) 진실로 (5장) 오기 곧 올 량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악조건을 이겨내고 온다면 연분이라고 노래하는 점에서 우락 역시, 연가의 하나이다.

 

다음으로는 남녀합창으로 부르는 태평가(太平歌)를 감상하였다.

태평가를 비롯하여 가곡과 시조가 다른 점은 다음 주에 소개할 것이며, 다음으로 연주된 백인영 류 18현 가야금산조와 25현금의 아리랑을 연주해 준 이민영 연주자에 관한 이야기도 다음 주에 이어가고자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