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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제주도 첫 인문지리지 《이익태 지영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6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제주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2002호 《이익태 지영록 (李益泰 知瀛錄)》이 있습니다. 《이익태 지영록》은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1633~1704)가 1694년(숙종 20)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래 1696년(숙종 22) 9월까지 재임기간 동안의 업무와 행적,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책 이름 《지영록(知瀛錄)》에서의 ‘영(瀛)’은 ‘영주(瀛州)’를 뜻하는데 이는 제주의 옛 이름이지요. 책 서문에 따르면 이익태는 제주목사를 지내면서 알게 된 제주도의 열악한 생활상과 누적된 폐단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수록된 내용은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가기까지의 여정, 재임기간 중의 공무수행, 제주도에 부임할 때의 행적과 그 과정에서 지은 시ㆍ제문ㆍ기행문 따위이며, 특히 조선 사람이나 일본인의 표류(漂流)에 관한 기록이 비중 있게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1687년(숙종 13) 김대황(金大璜)이라는 제주도 사람이 배를 타고 나간 뒤 파도에 휩쓸려 베트남(安南)에 이르렀다가 귀국한 내용 곧 <김대황표해일록(金大璜漂海日錄)>은 조선시대 베트남 관련 기록으로 희소성이 있지요.

 

《이익태 지영록》은 제주도의 문화는 물론 땅이름 따위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고, 외국인의 표류 상황에 관한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 표류민 정책 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보물 제652호로 지정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쓴 제주도 인문지리지인 《남환박물지(南宦博物誌)》(1704년)보다 8년이나 먼저 쓴 것으로, 연대가 가장 앞서는 제주도 첫 인문지리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