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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태평가”, 가곡 한 바탕을 마무리하는 노래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018년도 풍류산방을 시작하며 박문규의 남창가곡 <언락>과 황숙경의 여창가곡, <우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을 감상하기 전에, 전인근의 대금독주로 <상령산>과 <청성잦은한잎>을 감상하였는데, 고요한 산 중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원음 그대로 듣는 젓대의 소리야말로 도심에 찌든 모두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는 이야기, 대금은 <젓대> 또는 <저>라고도 불렀고, 《삼국사기》에는 “근심 걱정을 종식시키는 피리”라는 의미로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여창 가곡에 나타나는 가성(假聲)의 창법은 매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창법이라는 점과 가곡의 형식은 가사가 길고 짧던 간에 모두가 5장 형식이고, 노래를 안내하는 대여음(大餘音)과, 3장과 4장 사이의 중여음이 포함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 한 바탕을 마무리하는 태평가(太平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태평가는 남녀가 동일한 가사를 함께 부르는 노래로 그 빠르기는 매우 느려서 그 앞에 부르는 편수대엽(編數大葉)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이며 이수대엽과 비슷하다.

 

전통음악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만(慢)-중(中)-삭(數)”이라는 형식이 있다. 가곡을 비롯하여 풍류 음악인 영산회상, 민속기악의 대표적인 산조음악, 또는 노동요를 비롯한 민요조의 노래들처럼 느리게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이어지는 형식을 말한다. 그런데 가곡은 마지막 악곡이 매우 느린 악곡으로 끝나기 때문에 “만-중-삭-만”의 형식을 취한다고 하겠다. 그 마지막 <만>에 해당하는 곡조가 바로 태평가(太平歌)로 그 전곡인 편수대엽에 비한다면 무려 두 배 이상 느린 속도로 부르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빠른 소리로 파장을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 대부분인데 견주어, 가곡은 이처럼 느린 곡조로 되돌아와 한 바탕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정에 달했던 흥취와 열기 등, 고조된 감정을 가다듬는 마무리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장사훈(張師勛)의 「가곡과 인생」이란 글에서 태평가 부분이다.

 

“주안상이 벌어지기 전에 풍류가 빠질 리 없고, 이어 가곡이 시작되나 좌정한 선비들의 체모는 아직도 근엄하기만 하다. 이것이 우조 ‘초삭대엽’에서 계면조 ‘소용이’까지의 과정이다. 이윽고 순배가 돌아감에 따라 점잖은 농담이 오가고, 차츰 너털웃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언롱’ 이하, 곧 농과 낙의 노래가 대변하여 주고 있다. 술이 거나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체모를 가누지 못하고, 해학과 외설로 크게 웃고, 딱딱한 처신을 잠시나마 잊어본다. ‘편(編)’ 이하의 노래에서는 나를 잊고 잠시 자유 분위기를 만끽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흐트러진 자세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는 없다.

 

기우뚱하게 이지러진 갓을 바로 잡고, 옷깃을 다시 여미고, 큰 기침을 하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것이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이다. 서창인 ‘초삭대엽’으로 시작하여 ‘계면소용’까지는 원래의 자세를 유지하다가 농ㆍ낙ㆍ편으로 내려가면서 질탕하게 놀고, 태평가에서 다시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는데 태평가는 ‘이삭대엽’의 변화곡이므로, 다시 처음의 ‘이삭대엽’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가곡의 한 바탕을 마무리 하는 ‘태평가’는 ‘이수대엽’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음높이를 높은 청(淸)으로 변주시킨 곡이기에 가장 느린 속도인 <만>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가곡의 마지막 악곡이란 점, 남녀 합창곡이란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태평가라는 명칭부터가 특별하다.

 

대개 가곡의 이름에는 ‘초수대엽’, ‘이수대엽’, ‘삼수대엽’ 등의 ‘대엽(大葉)’이라든가, 또는 ‘평롱’, ‘언롱’ 등의 ‘롱(弄)’이라든가, ‘언락’이나 ‘우락’ 등의 ‘락(樂)’, 그리고 ‘우편’이나 ‘언편’ 등, ‘편(編)의’ 이름들을 다양하게 쓰고 있으나, 곡 이름에 ‘가(歌)’를 붙인 곡은 오직 태평가가 유일하다. 원래는 ‘가필주대(歌畢奏臺)’, ‘대(臺)’, 또는 ‘편대(編臺)’라는 이름이었다. ‘가필주대’란 가곡의 한 바탕은 ‘대(臺)’를 연주하면서 마친다는 의미이다. 태평가로 불리고 있는 것은 순전히 노래 가사의 시작이 <태평>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라 하겠다. 태평가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1장) (이려도) 태평성대, (2장) 저려도 성대로다.

(3장) 요(堯)지 일월이요, 순(舜)지 건곤이로다.

(4장) 우리도 (5장)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위 노랫말에서 첫 3음절인 (이려도) 부분은 생략된다. 장단의 처음부터 제11박까지는 거문고의 독주로 반주되다가 제12박부터 장고를 비롯하여 세피리, 대금, 해금, 단소, 가야금 등 모든 반주악기들과 남녀창이 동시에 <태평-타으-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곡 이름도 태평가로 굳어진 것이다.

 

 

태평가는 느리기도 하지만, 또한 장고의 장단법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16박 가곡장단의 장고점 순서를 안다고 해서 누구나 장단을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흐름을 읽어나가지 못하면 장단 치기는 매우 어렵다.

 

또 하나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가곡 반주에서 장고는 채편의 복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변죽을 치는 것이 원칙이다. 노래를 돕기 위한 반주라는 이유가 첫째이고, 둘째는 실내에서 연주되기 때문에 변죽을 가볍게 쳐야 하는 것이다. 만일 장고가 복판을 꽝꽝 친다면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반주 악기들의 가락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편락(編樂)’이나 ‘태평가’와 같은 악곡에서는 장고가 일정 부분에 한해서 변죽이 아닌, 복판을 쳐야하는 예외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강약에 따른 문제는 노래와 다른 악기들의 음량을 살피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태평가’에 있어서 장고가 복판을 쳐서 흥을 돋우는 부분은 제4장 제7박부터 시작해서 5장 셋째장단 제7박 전까지이다. 그 다음 박부터는 다시 변죽으로 되돌아와서 조용히 끝내는 형태가 원칙이다.

 

‘태평가’는 선율선의 유장미로도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시조시의 종장 첫 3음절, <우리도>를 부르는 가곡의 4장 분위기는 노래 선율과 반주악기들 사이 조화가 극치를 이루는 악장이라 볼 수 있다.

 

중여음(中餘音)을 연주하는 동안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난 창자는 4장을 고음(高音)으로 지른 다음, 여유 있게 뻗어 내린다. 박력을 담고 있는 그 선율선은 마치 유(有)-무(無)-유(有)의 생명력을 표출하고 있어서 가히, 가곡의 절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