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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황숙경은 정통파 여류가객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노래와 반주와의 관계, 남녀창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곡의 반주는 관현악 편성이지만, 가사나 시조창은 관악기와 장고, 혹은 장고만으로 부를 수 있으며 그 역할도 수성(隨聲, 소리를 따라 하는 것)반주라는 점, 이에 반해 가곡의 반주악기들은 대여음과 중여음이 존재하며, 대여음의 역할은 악곡의 음높이, 속도, 분위기 등을 제시해 준다는 점, 그 반주선율 역시 노래와 반진행, 또는 4도~5도의 상, 하행이며 기타 잔가락이 삽입된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의 절정 부분은 제4장 "우리도" 부분이란 점, 시상(詩想)의 전환이나 고음의 출현, 한 음으로 12박자를 뻗으며 유-무-유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부분이란 점, 남창과 여창의 차이는 가사를 붙이는 자리가 조금씩 다르며 여창은 잔가락과 가성의 창법을 쓴다는 점이 특징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여창 가객으로서 노래 자체도 일품이지만, 특히 노래하는 자태가 고운 정통파 여류 가객, 황숙경의 정가 인생을 소개해 보도록 한다.

 

 

원래 정가(正歌)란 아정하고 바른 노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아정(雅正)이라는 표현도 기품이 높고 올바름을 뜻하는 말이어서 자연스럽게 선비들의 풍류방에서 향유됐던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성악곡을 일컬어 온 이름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가곡의 곡조가 아정하고 정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가객들이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높은 기품과 바르고 당당한 태도인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어떠한 미동(微動)도 허락되지 않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는 노래가 곧 정가이다. 노래는 느리고 무게 있게 흘러가는데, 창자의 태도가 가볍고 산만하다면 노래의 무게를 반감시키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노래를 배우기 전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바로 정가의 태도인 것이다. 어찌 보면 부르는 사람의 됨됨이를 강조하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는, 창차(唱者)의 자세치고는 어렵고 까다로운 노래가 곧 정가이다. 그 어떤 노래가 이토록 까다로운 조건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여창 가곡의 황숙경을 주목하는 이유도 그가 가곡을 대하는 태도나 가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녀를 정통파 가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배경도 그가 국립국악고교에서 가곡으로 정규과정을 마쳤으며 대학과정을 거쳐 무형문화재의 이수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점이나, 그 후 대학에서 후진들을 양성하며 국내 주요 정가발표회나 정가극 공연에 거의 주인공으로 활약해 왔다는 점이 그의 활약상을 증명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선생님들의 판단은 저를 정가 전공자로 배정하였습니다.” 아마도 목소리며 성악에 남다른 재주를 발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얼핏 생각하면 무용과 정가는 전혀 다른 분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몸을 움직이고 몸짓으로 다양한 곡선을 만들어가는 분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용히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소리로 가락을 이어가는 양식이어서 겉으로 보는 표현방식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르게 앉아 미동도 허락되지 않는 자세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음량이나 음색으로 공간을 꽉 메워주는 노래의 세계는 몸을 움직여 표출해 내는 무용의 역동성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에너지가 분출된다고 하겠다.

 

 

한국무용과 정가가 모두 표면적으로 역동성을 강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정중동(靜中動)의 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가 정가 전공자가 되어 관련 악곡들을 한 곡, 한 곡 익혀 나가는 기간에는 수없이 많은 반복의 연습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긴 호흡으로 음정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시김새를 살려내는 연습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던 과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때로는 고요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폭풍이 몰아치는 격정의 순간을 만나기도 하는 등, 정가의 멋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여창 가곡의 대모로 알려진 김월하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월하 명인의 제자가 된 황숙경은 새로운 환경에서 여창가곡을 전수받기 시작하여 전수장학생을 거쳐 이수자가 되었다.

 

당시의 소감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선생님이 표현해내는 여창 가곡의 소리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천상의 소리 같았어요. 붓글씨로 치자면 일률적이고 딱딱한 획이 아니라, 마치 한 자루의 붓으로 다양한 필치를 그려 내는데, 진하고 흐린 농담(濃淡)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절하셨지요. 처음 들어보는 높은 경지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소리에 매료되어 따라해 보려고 노력했지요.”

 

여기서 잠시, 여창가곡이라는 말과 남창가곡이란 말이 반복되어 쓰이고 있는데, 잠시 그 의미를 정리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가령, 가곡의 어느 한 곡, 예를 들어 <편락>이라는 악곡을 남성이 부르면 남창가곡이 되는 것이고, 여성이 부르면 여창가곡이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남창가곡을 여성이 불러도 이 악곡은 남창가곡이고, 반대로 여창가곡, 예를 들어 <우락>을 남성이 불러도 이는 여창가곡인 것이다. 남창과 여창은 정해져 있기에 그러하다.

 

가곡은 원래 남성들의 노래였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