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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가객 황숙경, 정가극 무대의 주인공이 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9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여류가객, 황숙경을 소개하였다. 정가(正歌)란 아정하고 바른 노래여서 부르는 가객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바로 높은 기품과 바르고 당당한 태도가 요구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미동(微動)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 황숙경은 고교 시절 여창 가곡의 대모로 알려진 김월하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소리에 매료되었고, 그의 가르침으로 가곡 발표회를 꾸준히 열어왔으며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되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여창가곡이라는 말과 남창가곡이란 말은 각각 악곡이 정해져 있기에 남창가곡에 속해 있는 악곡을 여성이 불러도 이 노래는 남창가곡이고, 반대로 여창가곡에 속해 있는 악곡들을 남성이 불러도 여창가곡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김월하 명인으로부터 여창가곡을 전수받기 시작하면서 황숙경의 노래는 하루하루가 달라져 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예능교육은 더더욱 명인의 지도를 받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김 명인에게 공부하기 시작한 세월이 얼마쯤 지났을 무렵, 스승은 황숙경의 노래를 듣고 흡족해 하면서 “그래, 이제 됐구나.”라고 인정을 해 주었다고 한다. 스승의 짧은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지금의 황숙경을 있게 한 출발점이자, 그녀가 정가인생을 걸어 올 수 있었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라고 그녀는 회고한다.

 

 

현재 황숙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의 이수자로서 가곡, 가사, 시조, 등 정가의 정통성을 올곧게 이어나가는 한편, 정가를 활용한 새로운 양식의 공연 작품을 부지런히 선보이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정가를 부르거나 가르치는 일만을 고집하지 않고, 정가의 예술적 확장을 통해 대중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해 오고 있다. 그가 출연해 온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황진이>, <이매창>,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조선의 대표적 여성 문인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정가극(正歌劇)’들이다.

 

‘정가극’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이는 정가의 음악어법을 활용하여 만든 음악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그녀는 정가의 멋이나 음악세계의 확산을 이루는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악계에서는 판소리의 어법을 활용하여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음악극 장르를 창극(唱劇)이라고 부른다. 창극 이전에는 국극(國劇)이라고도 불렀다. 1950년대는 여성들에 의해 절정의 인기를 모았던 여성국극시대도 있었다.

 

창극 역사에 비하면 매우 늦었지만, 90년대 초에는 경서도 민요를 주 어법으로 삼고 있는 경서도 소리극도 선을 보였고, 최근에는 정가극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가의 어법을 살려 음악극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이라 할 것이다.

 

 

국립국악원에서 막을 올린 <선가자 황진이>이라는 정가극을 참관하고, 나는“그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무대”라는 제하의 매우 긍정적인 논평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정가의 연창법이 혼자, 또는 여럿이 돌려가며 부르는 좌창의 형태가 기본인데, 이처럼 창자(唱者)의 행동을 제한하는 정(靜)적인 노래로 음악극을 제작한다는 자체가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국립국악원과 같은 인적, 물적 지원이 가능한 기관이 아니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창극이란 형태도 판소리의 공연 형태가 실내로 들어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 공연양식으로 볼 때에 새롭게 재창조되는 과정 속에서 전통적인 요소가 상당부분 달라졌다고 하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주로 주제의 선정문제, 소리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배우의 확보문제, 소리의 특징을 꿰고 있는 연출력의 문제, 관현악 등의 창작음악과 안무, 그 외에 음향, 배경, 조명, 무대의 여건 등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새롭게 선을 보이기 시작한 정가극 무대에 전통 정가의 여류 가객, 황숙경이 주인공을 맡아 왔다고 하는 사실은 그가 노래는 노래대로 기본기가 탄탄하며 정가를 부르기에 적절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연기는 연기대로, 또한 춤은 춤대로, 여러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2016년부터 <가곡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창작곡 발표를 꾸준히 해 오면서 그녀에게서 찾을 수 있는 그녀만의 독특한 음악의 세계나 노래를 대하는 태도라 하겠다.

 

가곡이나 시조의 노랫말이 옛 시조시라면 이 장르는 근ㆍ현대시에 새로운 선율을 얹은 창작곡이다. 정가의 특징이나 분위기를 동시대 예술로 되살려 냄으로 해서 그녀만의 예술적 감각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고답적인 정가계를 위해서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김월하 명인을 통해서 전해 받은, 그리고 현재는 황숙경이 즐겨 부르고 있는 이 여창가곡은 남창가곡의 영향을 받고 만들어진 노래이다. 그래서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의 탄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파생곡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창만의 독특한 발성법이나 표현양식을 위해 가성창법의 등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여창가곡의 멋을 모르겠다면, 황숙경이 부르는 여창가곡을 들어보라. 청아한 울림 가운데, 꿋꿋하고 힘이 넘치면서 부드러운 곡선미를 살려내는 그 소리의 역동성이 바로 여창 가곡의 아정함이며 진정한 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