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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기해년(2019), 전통가곡과 친해지는 해가 되기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0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일주일에 한번 쓰는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오늘, 새해 첫날로 400회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재미도 없는 잡문의 이야기를 관심있게 읽어 주고, 격려를 해 주신 우리문화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지난주는 김월하 명인으로부터 여창가곡의 실력을 인정받은 황숙경 가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녀의 노래는 청아한 울림 가운데, 꿋꿋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역동성이 돋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독자 여러분이 2019 기해년 전통가곡과 친해지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가곡의 역사와 그 음악적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곡이 불리기 시작한 때는 대략 언제쯤일까?

 

확실치는 않으나, 늦어도 16세기 말은 분명하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1580년, 조선 선조 때에 안상(安瑺)이란 가객이 《금합자보(琴合字譜)》를 펴냈는데, 이 악보 속에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慢大葉)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노래 가사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사와 함께 관악기, 현악기 등 반주악기들의 선율이 구음(口音)과 함께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가곡의 총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늦어도 16세기 말엽에는 가곡이 불렸다는 근거가 분명하다는 말이다. 악보로 나타난 시기가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 가곡이 불리기 시작한 역사는 더 이른 시기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곡의 역사는 어느 정도 더 올라갈 수 있을까? 우선, 조선조 세조 때 곧 15세기 중반까지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대악후보》라고 하는 악보집에도 만대엽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악보가 만들어진 때는 영조 무렵이나, 악보가 담긴 내용은 주로 세조시대의 음악을 담고 있기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이 악보에는 반주악기들의 가락은 보이지 않고, 주로 노래의 골격선율만 실려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가곡이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적어도 1400년대 중반까지는 소급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에 견주어 여창가곡은 19세기 중반, 그러니까 《가곡원류》 시절부터 등장한다는 점에서 훨씬 후에 만들어진 노래가 분명하다. 여창가곡이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남성들의 사랑방에서 불리던 노래가 가곡이었다. 남성 가운데서도 주로 선비나 문인, 학자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그들은 좌서(左書)우금(右琴)이라 하여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며, 또 한 손에는 악기를 들어 마음을 닦으면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던 계층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래의 아름다운 성음(聲音)을 쫒기보다는 사악한 감정이나 지나친 욕구를 다스리기 위해 가곡을 불렀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래가 널리, 널리 확산되어야 그들이 살던 사회도 정화된다고 믿고 있었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던 노래가 바로 가곡이라고 여긴 것이다.

 

나는 전에 대학 강단이나 연수원 강의 시에 가곡을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며 물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 까닭은 밥이나 물은 맛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샘물은 맑을 뿐, 맛이 들어 있지 않으므로 목이 마르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맛이 들어있는 음료수를 먹기도 하겠지만, 심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맛이 없는 순수한, 그러나 깨끗한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

 

전통가곡을 깨끗한 샘물에 견주는 까닭도 다양한 맛이 들어 있지 않아서 언제나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곡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가곡이 다른 장르의 노래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그 특징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가곡은 세련된 형식미가 있는 노래이다. 전주격인 대여음이 연주되면 노래의 1, 2, 3장을 부르고, 다시 중여음이 연주되면서 4, 5장을 부르게 되는 5장 형식의 노래이다.

 

모음곡 형식인 가곡은 느린 템포의 만(慢)으로 시작해서 점점 빠르게 진행하다가 느린 속도로 되돌아와 끝나는 만-중-삭-만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또한 각 악장의 시작하고 끝나는 박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라든가, 남성, 여성, 남녀교창, 남녀합창, 등 연창방법이 다양하다는 점도 모두 세련된 형식미를 알게 하는 특징이라 하겠다.

 

2) 선율의 흐름이 한가하면서도 유장하다. 평이하면서도 완만한 선율선에서 부드럽고 여유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고, 이러한 곡선의 흐름 속에는 유연함이 보이고 있는 점, 또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3) 16박자의 느리고 긴 장단형과 각 장고를 치는 순서나 주법이 즉흥성을 배제한 채,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요성을 비롯한 시김새의 운동모습이 간결하고 단순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식음이나 잔가락, 또는 표현법을 과감하게 배제함으로 절제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 될 것이다.

 

4) 가성의 창법을 불허하고, 뒷목을 쓰는 창법이나 모음분리의 발음법 등이 특징적이다. 이와 함께 양성(陽性)모음을 음성모음으로 변화시키거나 매개모음을 삽입하는 발음법을 통해 장중미를 느낄 수 있다.

 

5) 노래선율과 관현악 반주악기들과의 조화와 협동의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는 화합의 노래라는 점도 특징에 포함될 수 있다.

 

 

이처럼 가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을 비롯하여 훌륭한 재상이나 상류계층의 인사들이 좋아하던 노래로 역사 속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온 노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또는 감정과 즉흥성이 배제되어 있거나, 격식이 까다롭다는 등의 이유로 외면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곡이 느리고 재미없는 노래였다면 이미 역사 속으로 살아졌을 것이 분명한데, 오히려 더욱 방대하게 확대 발전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가곡을 오늘에 이어준 가객들의 노고가 고마울 뿐이다.

 

16세기말, 《금합자보》를 지은 안상을 비롯하여, 《양금신보》의 양덕수, 그 뒤를 이어 이득윤, 신성, 김천택, 김수장, 박효관, 안민영과 같은 가객들, 장우벽, 오동래, 최수보, 정중보를 비롯한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에 소개되어 있는 유ㆍ무명(有ㆍ無名)의 가객들, 그리고 1900년대 이후, 하중곤, 명완벽, 하순일, 하규일 명인 등, 특히 하규일로부터 가곡을 전수받은 이병성, 이주환, 박창진, 김기수 등 이왕직 아악부원들,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의 뒤를 이은 홍원기, 김월하 등의 가곡 사랑이 후진들에게 전해졌기에 오늘의 가곡은 그 예술적 가치와 함께 생명력이 더더욱 강력해 진 것이다.

 

2019 기해년 새해, 우리문화신문 독자 여러분, 건강하시고 전통가곡과 가까워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가곡은 긴 역사와 다양한 특징, 그리고 인간의 욕구, 명예와 권력이 한낱 뜬 구름임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