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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산타령 부른 홍주연, 제5회 벽파대상 주인공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0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의 역사와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선조 선조 때의 《금합자보》 속에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慢大葉)이 반주악기보와 함께 실려 있는 점으로 늦어도 16세기 말엽은 분명하다는 점, 그러나 실제로는 세조시대, 곧 15세기 중반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는 점, 이에 견주어 여창가곡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났다는 점, 가곡은 성음(聲音)을 쫒는 노래가 아니라, 감정을 절제하여 사회를 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던 노래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 특징은 세련된 형식미, 선율의 유장미, 느리고 긴 장단형, 즉흥성을 배제하는 표현, 장식음이나 잔가락을 덜어내는 절제미, 창법이나 모음분리의 발음법에서 오는 장중미, 관현악과의 조화미 등이란 점, 가곡을 오늘에 이어준 공로는 수많은 가객들에게 돌려야 하는데, 특히 1920년대 이후 하규일로부터 이병성, 이주환, 박창진, 김기수 등이 배웠고, 그 뒤를 이은 홍원기, 김월하 등의 가곡 사랑이 후진들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제5회 벽파 대제전 전국경창대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벽파대회는 지난해 11월 5(일), 벽파 이창배의 고향인 서울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성동구와 벽파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만)가 주최하고, 국가문화재 19호 산타령보존회(이사장 황용주)가 주관한 행사였다.

 

 

이 대회는 기악분야나 무용분야 없이 경서도지방의 민요 전공자들을 위한 대회였음에도 300명이 넘는 소리꾼들이 참가했다. 대상을 받았다고 해도 다른 대회에 굔주어 상금액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해외공연이나 연수, 특별무대와 같은 별도의 특전이 마련되어 있는 대회도 아닌데, 이처럼 많은 출전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벽파>라는 경서도 소리의 대사범 이창배의 아호를 붙인 대회이고 보니 그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집행부나 심사위원들의 공정성도 어느 정도 담보되어 있기 때문에 출전욕구를 자극한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열리는 각종 경연대회는 연 100여개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순수 전통성악 분야만 해도 시조와 판소리 분야는 거의 지방마다 활발하게 열리는 편이나, 안타깝게도 경서도소리 쪽은 다소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경창대회는 올해에도 즉석에서 채점한 결과를 전자송출 방식으로 처리해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법을 도입해서 대회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이나 투명성을 높였다.

 

 

이번 제5회 벽파대회는 신인부나 일반부는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들어 민요의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학생부 중에서도 초등학생부의 출전자들은 재롱잔치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고, 고등부의 실력은 대학 진학을 앞 둔 학생들답게 음악적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수준 이상이었다.

 

이날, 명창부의 대상은 심사위원 전원(15명)의 채점 결과로 경기산타령을 열창해 준 홍주연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평소 노래, 특히 민요조의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일신상의 여건으로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접고 주경야독하며 모 전문대학에서 유아교육 전문과정을 마친 사람이다.

 

홍주연은 유난히 경기소리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남의 소리꾼, 방영기 명창의 소리를 접하게 되었고, 그 소리에 반해 그의 문하생이 된 늦깎이 소리꾼이라고 한다. 성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선소리산타령의 전수조교인 방영기 명창 문하에서는 이름 있는 소리꾼들이 여러 명이 배출되어 현재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늦게 명창 반열에 오른 소리꾼들을 보면 처음에는 그저 소리가 좋아서 취미로 배우다가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작심을 하고 경기소리를 배우다가 전문인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늦게 시작한 탓에 더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홍주연 역시, 다소 늦은 나이게 시작하였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노래의 이론과 실기에 몰두해 왔다고 실토한다. 그녀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간파한 방영기 명창은 그녀로 하여금 대학의 국악과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전문 성악인의 길을 걷도록 강력하게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스승의 권유에 따라서인지, 아니면 본인의 결심이었던지 그녀는 대학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4년을 마치고 졸업을 한 후에는 문화예술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의 석사 과정이란 길이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는 누구나 쉽게 선택하고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실기와 이론, 그리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그는 "선소리 산타령을 활용한 유아교육을 위한 교수법"이란 논문을 제출하고 석사학위를 받아낸 것이다. 자료도 충분치 않은 산타령 관련 내용을 활용하여 유아교육의 교수법을 제시했다는 점은 이 길의 선배로 격려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석사출신 소리꾼으로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